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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상무 '10억 달러=패스트트랙'은 청구서?…고민 커진 기업들

입력 : 2025-02-24 11:08:35 수정 : 2025-02-24 11: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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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절단, 러트닉 장관과 면담…소통 물꼬 텄지만 투자 계획 셈법 복잡
안덕근 장관, 이르면 이번 주 방미…통상 압력 완화 전략 모색 분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이끄는 경제 사절단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무역·통상 정책을 총괄할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면담한 가운데 국내 기업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양국 소통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러트닉 장관이 대미 투자를 요청하며 10억달러(약 1조4천억원)라는 사실상의 기준을 언급한 만큼 이를 일종의 '청구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정부 통상 당국은 러트닉 장관의 10억달러 언급이 한국을 포함한 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 투자를 독려하는 차원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관세 최소화 등 대한국 통상 압력을 최대한 완화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러트닉 장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취임 선서식에 앞서 한국 경제 사절단과 만난 자리에서 대미 투자를 많이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40여분간 진행된 면담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김원경 삼성전자 사장, 유정준 SK온 부회장, 성김 현대자동차 사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조석 HD현대 부회장, 주영준 한화퓨처프루프 사장,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등이 참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 대표와 조선, 에너지, 원전, AI·반도체, 모빌리티, 소부장 등 6대 분야 협력 모델을 설명할 참석자들로 추려 사전에 상무부에 면담을 신청해 놨다"고 전했다.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러트닉 장관과의 면담은 연방 상원의 인준안 투표와 취임 선서식 등의 일정 때문에 현지에서 막판 조율 작업을 거치며 전날 밤 최종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참석 대상자 중 일부는 급하게 귀국 일정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 당시 공식 취임 전이던 러트닉 장관은 사견을 전제로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전담 직원을 배치해 심사 허가 등의 절차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1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면 그 이상의 최고급 대우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억달러 미만의 투자에 대해서도 규제 완화 등을 통해 미국 정부가 지원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러트닉 장관 선서식 이후에 서명한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우선주의 투자정책' 각서에 서명하고 특정 동맹과 파트너가 첨단기술과 기타 중요한 분야의 미국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하도록 촉진하기 위해 '패스트트랙 절차'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10억달러를 넘는 대미 투자에 대한 환경 평가를 신속히 처리하겠다고도 했다.

한 참석자는 "러트닉 장관이 10억달러 이상을 반드시 투자하라고 한 것은 아니고 10억달러 이상 투자시 미국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해 줄 수 있다는 취지였다"며 "조선 등의 분야에서 양국이 협력을 잘해보자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최종현학술원 주최로 열린 '2025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 행사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워싱턴특파원단 제공

재계 관계자는 "사절단이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그동안 한국의 대미 투자와 의지를 강조하고 양국간 경제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만큼, 소통의 물꼬를 튼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방식으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기업은 면담에서 언급된 '10억 달러'를 일종의 투자 기준 하한선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실제로 면담에서 러트닉 장관은 한화그룹 측이 1억달러를 투자해 인수한 미국 현지 조선소 필리조선소의 이야기를 꺼내자 10억달러 이상부터 패스트트랙 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참석자는 이날 면담 시간 대부분이 "러트닉 장관이 한국 기업들에 대미 투자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데 소요됐다"며 "면담이 다소 일방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초 사절단이 계획했던 6대 분야 협력 모델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트럼프 2기의 '관세 폭탄'과 반도체 보조금 재검토 등으로 대미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국내 기업들의 머릿속도 한층 복잡해졌다.

일단은 미국의 통상 정책을 비롯해 글로벌 경영 환경에 여전히 변수가 많은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따져보며 향후 투자 계획을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은 취재진과 만나 "어느 기업도 '트럼프 시기에 얼마를 하겠다'고 생각하며 다가가지 않고, 이게 내 장사에 얼마나 좋으냐 나쁘냐를 얘기한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생산 시설을 좀 더 원한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인센티브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통상 수장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르면 이주 미국을 방문해 러트닉 장관과 대좌해 미국의 관세 조치 등 통상 정책에 대한 우리 측 입장을 전달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

여기서 안 장관은 최근 급증한 한국의 대미 투자 동향을 소개하고, 향후 한미 양국에 모두 이익이 되는 산업·기술 협력 강화를 바탕으로 이런 동력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미국이 관세를 무기 삼아 해외 기업의 자국 투자를 유도하는 전략으로 돌아선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한국이 미국의 제조업 부흥의 최적의 파트너로 최근 수년간 이미 최대 대미 직접 투자국이 됐다는 점을 부각할 방침이다.

실제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본격화한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대중 견제 전략에 호응해 한국은 사상 최초로 미국의 최대 투자국이 된 상태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조셉 윤(Joseph Yun) 주한미국대사 대리와 면담을 갖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2023년 최다 대미 투자국은 한국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해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215억 달러에 달했다.

안 장관은 나아가 트럼프 2기에 접어들어서도 반도체 과학법에 따른 투자 보조금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생산 보조금 등의 골간이 유지돼 한국 기업들의 안정적 투자 환경이 보장될 경우 강력한 한미 산업 동력이 유지되면서 더욱 많은 대미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득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의 첫 회담에서 에너지 수입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질 경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각별한 챙기는 알래스카 석유·가스 개발 사업에 민·관 차원 참여 관심 의향을 표명하는 방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10조원대 자금 투입이 예상되는 미국 대형 제철소 신규 건설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도 언급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안 장관이 이르면 이주에도 방문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속도감 있게 방미 협의를 추진하고 있다"며 "대미 투자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구체적인 입장을 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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