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은 결국 노래가 힘이다. 스피커 볼륨을 경쟁하듯 높이며 관객을 압도하려는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단출한 통기타 선율과 꾸밈없는 목소리만으로 마음을 두드리는 작품이 있다. 원스(Once). 주인공 ‘가이’와 ‘걸’이 함께, 또 따로 부르는 노래는 극장을 떠난 후에도 한참 동안 머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원작은 2007년 개봉한 독립영화. 1억 400만 원 남짓한 제작비로 탄생한 이 작은 영화는 당시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23만여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워낭소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개봉 독립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11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처음 무대에 오른 후, 이듬해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자마자 토니상 8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에서는 2015년 초연 이후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더블린 한 청년이 있다. 떠나버린 연인을 그리며 노래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그는, 홀로 아이를 키우는 체코 이민 여성과 조우한다.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알아가고, 짧은 순간이나마 마음이 닿는다. 그러나 이들의 감정은 화려한 결말로 귀결되지 않는다. 현실 속 어른의 사랑처럼 엇갈리는 길 위에서 조용히 끝맺음된다.

뮤지컬은 영화와 대체로 같은 흐름을 따라가지만, 악기점에서의 연주 장면이나 밤새 녹음한 테이프를 차 안에서 듣는 장면처럼 많은 이가 기억하는 명장면은 빠져있다. 빈자리를 채우는 건 영화 주인공이자 노래 작곡·작사가 글렌 핸사드와 마르게타 이글로바가 뮤지컬을 위해 새롭게 만든 곡 ‘골드(Gold)’.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 ‘리브(Leave)’, ‘이프 유 원트 미(If You Want Me)’ 못지않은 울림을 전한다.
극이 시작되기전 객석을 예열하는 프리쇼 마지막을 장식하는 노래 '라그랑 로드(Raglan Road)' 또한 인상적이다. 주인공 아버지를 연기하는 이정열이 부르는 이 아일랜드 민요풍 노래는, 흥겨운 분위기로 채워졌던 무대를 단숨에 장악하며 ‘한번’뿐이었을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무대는 마치 한 장의 오래된 엽서같다. 한 남녀가 음악으로 연결돼 데모CD를 한 장 녹음하고 다시 엇갈린 길로 나아간다는 슴슴한 줄거리를 닮았다. 거울과 따뜻한 빛을 발산하는 등으로 채워진 벽, 바와 피아노가 전부다. 이를 채우는 건 오롯이 배우들 몫이다. 지난해 5월부터 개인 연습을 해왔다는 이들은 연기와 노래, 춤, 악기 연주까지 홀로 해내며 무대를 채운다. 통기타가 중심을 이루고,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만돌린, 우쿨렐레, 아코디언, 드럼이 더해진다. 출연진 전원이 최소 한 개 이상의 악기를 연주하며, 많게는 아홉 가지 악기를 다룬다. 오케스트라는 없다. 모든 연주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에 의해 완성된다.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 특유의 화려한 군무도 없다. 악기를 들고 발을 구르거나 박수를 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 단순한 움직임조차도 세밀하게 조율된 감정선 위에서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과장된 음향 효과 없이도 배우들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관객의 가슴에 직접 꽂힌다. 노래란, 이렇게도 솔직하게 전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지난해 1월, 800명이 몰린 오디션을 거쳐 단 20명이 무대에 올랐다. 여주인공 역에는 초연 멤버 박지연과 새롭게 합류한 이예은이 이름을 올렸고, 남주인공 역은 신예 한승윤, 유망주 이충주, 그리고 초연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셨다는 윤형렬이 맡았다. 직접 마주한 무대에서 박지연과 한승윤은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했다. 얼마나 고된 연습을 거쳐야만 가능한 무대였을지, 자연스레 짐작이 갔다.

“뮤지컬 원스는 제게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는 박지연은 이번 작품을 위해 모든 일정을 조정했다. 그녀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순간마다 짜릿한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단순한 보컬이 아니라, 한 장면의 흐름을 주도하는 연주자로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부르는 '폴링 슬로울리'는 특히 애정하는 곡이에요. 이 노래는 원스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죠. 처음 달라진 가사를 부르던 날,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5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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