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우선 적자가구 비중이 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지난해 4분기 적자액은 34만9000원에 달해 전년 동분기보다 1만9000원 더 악화했다.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큰 가구를 의미하는 적자가구 비중도 2023년 4분기 55.8%에서 지난해 4분기 56.9%로 늘었다.
누적된 고물가와 저성장은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더 가중시키고 있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였다. 이 수치만 보면 그리 높다고 볼 순 없지만 문제는 그간 다락같이 올랐던 수준에 더해서 2.0% 올랐다는 점이다. 실제 물가는 2월 기준 2년 전보다 5.2%, 3년 전과 비교해서는 10.2% 올랐다. 또 2023년 1.4%, 지난해 2.0% 정도에 그친 저성장 흐름은 고용시장으로 전가되면서 저소득층의 살림을 악화시키고 있다. 저소득층의 비중이 높은 건설업 취업자는 올해 1월 16만9000명 준 데 이어 2월에도 16만7000명 감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초래한 ‘12·3 비상계엄 사태’는 금리 인하에 맞춰 회복 조짐을 보이던 내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여기에 미국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관세 전쟁에 따른 교역 침체 우려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전례 없는 불확실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각종 악재 속에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진작부터 권고했고, 정치권과 정부 역시 추경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린 상황에서 추경의 규모, 사업 선정을 두고 여야가 평행선을 그리면서 졸속 추경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은 영세 소상공인 100만원 에너지 바우처 지급, 취약계층 최대 50만원 선불카드 지급, 영세소상공인 1인당 최대 200만원 지원 등 ‘3종 세트’를 포함한 15조원 규모의 추경을, 더불어민주당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원, 지역화폐 10% 할인 지원, 상생소비 캐시백 등을 포함한 35조원 수준의 추경을 주장하고 있다.
경기 회복 차원에서 소비진작책 위주의 추경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올해 정부 예산이 비상계엄 사태 탓에 기형적으로 편성됐다는 점에서 정치권이 표심을 위한 추경에만 매몰돼서는 곤란하다. 올해 예산에서 정부 총지출은 673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큰 폭의 세수 감소 등에 따라 2005년 이후 20년 만의 최저 증가율을 기록했던 2024년(2.8%)보다 더 낮았던 셈이다. 이에 따라 국회 심의·의결 과정에서 늘어야 할 각종 복지 지출 사업도 줄줄이 쪼그라든 상태에 머물고 있다. 대표적으로 긴급복지지원제도 관련 예산은 3501억900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2.3% 삭감된 상태다. 지난해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심의에서 498억9100만원 늘리기로 결정됐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증액 절차가 생략되면서 축소 편성돼 있다. 이 제도는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등 빈곤층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대책으로 꼽힌다. 이 밖에 발달장애인지원(730억6100만원), 자립준비청년 자립수당 지급(45억4800만원) 등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증액이 논의됐지만 반영되지 않은 사업도 다수다.
경제가 어려우면 취약계층부터 벼랑 끝에 서게 된다. 표심을 겨냥한 현금성 지원 사업 외에 서민 삶과 직결된 각종 사업도 추경 테이블에 올라 제대로 논의돼야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