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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했냐” “걸음이 이상하다” 편견…20대 ‘소뇌 위축증’ 환자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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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3 07:18:49 수정 : 2021-04-23 0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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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 대통령’ 앓는 병…소뇌에 서서히 퇴행성 변화와 신체 통제 못해
희망 없는 두려움·고통 속에서 자신의 병 모르는 사람들의 놀림 가슴 아파
유튜브 통해 ‘소뇌위축증’ 알려…“남은 삶 절망 속에서만 살고 싶지 않아”
소뇌 위축증에 걸린 여성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일본 드라마 ‘1ℓ의 눈물’ 중 한 장면.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대낮부터 술 취해서 왜 그러고 다니느냐?”, “걷는 게 왜 그러느냐?”

 

이런 핀잔과 놀림을 매일 같이 받는 한 20대 후반 여성 A씨가 있다. 

 

그는 보통의 남들과 다르게 위태롭게 휘청거리며 걷는다. 넘어지기도 일쑤다. 그런 A씨를 다른 이는 돕기는커녕 이상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A씨에겐 남모를 사정이 있다. 소뇌 위축증을 앓고 있다. 소뇌에 서서히 퇴행성 변화가 오는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을 통제하는 힘을 서서히 잃어 말기에는 사망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걸음걸이 탓에 때때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고 하소연한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동안만큼은 그런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소원이라고 호소한다. 

 

KBS에 따르면 그는 어느날 갑자기 내리막길에서 넘어지면서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이게 2016년의 일이었다. 

 

처음 A씨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머리가 어지럽고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졌다.

 

결국 병원을 찾게 됐는데, 처음에는 의사들도 제대로 된 진단을 해주지 못했다. 몸에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성 질환’이 아니겠느냐는 진단을 내릴 뿐이었다.

 

그 무렵 A씨는 자신의 증상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1ℓ의 눈물’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알게 됐는데, 소뇌 위축증을 앓다가 숨진 현지 여성 키토 아야의 수필집을 원작으로 했다. 이 드라마 주인공의 증상이 자신과 너무 똑같았고, ‘대형병원에 가서 신경과 정밀 검진을 받아보라’는 의사의 제안에 검사를 받아보니 결과는 우려했던 대로 소뇌 위축증 진단이었다.

KBS 캡처

 

소뇌는 몸의 운동조절 기능과 평형감각을 담당하는데, 위축되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유전적 또는 후천적 요인으로 모두 발병할 수 있는데, 그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치료제도 없고, 발병 후 평균 7∼10년 숨을 거두게 된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서히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말조차 할 수 없게 되지만, 인지능력은 정상인 상태로 그대로 유지된다는 게 의료계 설명이다.

 

A씨가 소뇌 위축증으로 시한부 삶을 통보받은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는 지난 겨울을 보내면서 몸이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보행기 역할을 하는 유모차를 잡고서야 겨우 걸어다닐 수 있는 상태다.

 

몇몇은 그런 A씨의 모습에 술에 취했다느니, 걷는 게 이상하다느니 하면서 놀린다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놀리고 지나가는 이들이 미웠지만, 그들도 내가 그 병에 걸렸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결국 많은 사람이 소뇌 위축증이라는 병을 알아야 그런 놀림을 덜 받게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KBS에 말했다.

A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비틀이 캡처

 

이에 A씨는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 채널은 증상이 심해졌다고 느낀 3개월 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석달 동안 36개의 동영상이 올려졌다.

 

A씨는 유튜브 활동을 통해 소뇌 위축증을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이 끝나간다는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는 또 다른 방법으로 삼았다고 KBS에 털어놨다.

 

그는 앞으로 하루하루 서서히 근육을 못 쓰게 되고 말도 못 하게 되겠지만, 남은 삶을 절망에서만 살고 싶지는 않다고 KBS에 강조했다.

 

이승구 온라인 뉴스 기자 lee_ow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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