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협의회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현 경제 상황의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삼성사장단은 현재의 위기가 ‘신뢰 상실’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고, 부화뇌동하기보다는 일단 차분하게 대응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삼성 관계자는 “매출과 이익의 90% 정도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이번 위기가 근본적으로 신뢰상실에서 발생했고, 이로 인해서 달러 경색이 빚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기태 부회장은 “수많은 정보들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로 들어오고 있다”며 “글로벌 변수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정보 교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에 앞서 지난 6일 현대·기아차그룹과 SK그룹이 각각 정몽구 회장과 최태원 회장 주재로 경영전략회의를 연데 이어, LG그룹도 7일 구본무 회장 주재로 임원세미나를 열어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환율 상승의 직격탄을 맞은 항공·정유업계 등은 이미 ‘패닉’ 상태다.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은 원화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업계 전체로 700억∼800억원 가량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원유를 도입하지 않는 것 외에는 현재의 ‘환율 폭탄’을 피할 방법이 없어 속을 태우고 있다.
◆달러확보에 ‘사활’건다=환율이 하루 만에 60원 이상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달러 확보 전쟁도 가열되고 있다. 최근 1주일 만에 2000억원이 넘는 환차손을 입은 항공업계는 해외 차입 금리가 폭등하면서 외화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리보(런던은행간 금리)+2.5% 정도였던 국제 자금시장 조달 금리가 최근 리보+4.3%로 올랐지만 그마저도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 정유사들도 ‘달러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정유사들은 달러 거래가 많고 국제신용도 좋지만 통상 리보에 1% 포인트 정도만 얹어주면 달러를 빌릴 수 있던 것이 요즘은 3%포인트를 더 주고 있다.
그동안 달러를 쌓아두었던 기업들도 다양한 형태의 외화 운용으로 유동성 위기를 타개해가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등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수입대금으로 지급하는‘내추럴 헤징’으로 대응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달러로 수출한 나라는 달러로 수입하고, 유로화로 수출한 나라는 수입도 유로화로 하는 ‘환매칭’으로 환전 비용이나 환리스크를 없애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수출할 때는 달러로 결제하고 부품을 수입할 때는 유로화 등으로 결제하는 방법으로 적정 비율의 달러를 보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경우 원자재 수입을 장기계약으로 체결, 가격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세계적인 철강제품 수요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는 반기 말 현재 5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제품의 70%가량을 수출하면서 지속적으로 외화가 유입되고 있어 달러화 확보를 위한 특단의 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대신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 원화와 달러 보유 비율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운용할 방침이다.
김기동·김수미·조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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