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다. 약간의 불편함을 참을 수 있다면, 북유럽을 터키항공과 유레일로 둘러보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터키는 유럽을 잇는 관문이다. 터키항공으로 북유럽에 접선한 뒤에는 유럽 21개국을 연결하는 철도인 유레일을 이용할 수 있다. 짧은 일정으로 북유럽 3개국을 둘러봤다. 평화의 도시 오슬로, 북유럽의 베니스 스톡홀름, 2011년의 유럽 문화도시로 선정된 핀란드 투르쿠 등이다.

노르웨이는 피오르, 바이킹, 노벨평화상 등으로 알려진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과 유엔의 ‘인간개발지수’ 최상위 순번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수도 오슬로는 그 창구 격이다. 세계적 여행 포털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www.tripadvisor.com)가 꼽은 2008년을 빛낸 화제의 여행지 8곳 중 한 곳이다. 북유럽 문화의 핵심을 파악하려는 프랑스와 스페인 등 서유럽 관광객의 최고 인기 지역이기도 하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6시간 기차를 달려 오슬로에 도착했다. 높은 산지를 통과하자 연이어 백설의 세상이 펼쳐진다. 북유럽에서는 3월 말은 물론 4월에도 눈이 내린다.
동행한 이들은 “동화와 엽서에 나오는 모습”이라며 저마다 탄성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승객들의 표정엔 어색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편하게 노트북을 켜고, 책을 읽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여유롭다. 국경선을 넘는 게 생사를 건 모험이고, 이질적인 문화와 접촉인 우리로서는 부러운 풍경이기도 하다.
오슬로 중앙역에 내리기 전부터 ‘평화’와 ‘안정’이라는 단어가 객차 내부를 흘러다닌다. 차창 밖으로는 휘날리는 눈발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중앙역은 노르웨이의 또 하나의 국제공항이다. 유레일을 이용하는 여행자는 물론 외국인 거주자도 다수 이용하는 곳이다. 노르웨이 전체 인구의 10%가 외국인이고, 오슬로 거주자의 25%가 외국인이다.
오슬로는 피오르 여행을 위한 경유지이지만, 문화의 도시요 평화의 도시다. ‘절규’의 뭉크와 탐험가 아문센, 난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노벨상 중 유일하게 노벨평화상 수상식은 스웨덴을 벗어나 오슬로 시청사에서 열린다. 오슬로시 건설 9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시청사는 뭉크의 ‘인생’과 북유럽 신화를 다룬 ‘에다’를 표현한 나뭇조각이 가득하다. 오슬로는 또한 선박박물관의 보고이기도 하다. ‘바이킹 선박 박물관’과 뗏목 형태의 콘티키 호를 전시한 ‘콘티키 박물관’ 등이 관광객을 반긴다. 비겔란 조각공원이 대표해 온 오슬로 야외 관람의 품격은 중앙역사 인근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가 이어받았다.
오슬로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오슬로 카드’가 제격이다. 이 카드로는 박물관과 유적지를 둘러보고, 대중교통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24시간권과 48시간권, 72시간권 등이 마련돼 있다. 눈이 내리지만 거리에는 유모차를 미는 남성들이 더러 눈에 띈다. 장관의 50%가 여성이고, 남성 육아휴직이 당연한 사회인 오슬로의 당당한 모습이다.
노벨평화센터 등 명소가 몰려 있는 시청사 뒤편은 오슬로항으로 이어진다. 10세기 전후 유럽은 물론 세계사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바이킹의 후예들’이 동양의 이방인을 반긴다. 세계를 호령했던 바이킹들이 오래 침묵하는 것처럼, 추위에 지친 듯 많은 배들이 선체를 항구에 묶어두고 있다. 간혹 겨울새들이 바다를 선회하며 역사를 전해준다. 앞으로 고작 몇 달 뒤면, 이곳은 백야의 여름이 펼쳐지고 피오르를 탐험하는 이들이 넘칠 것이다.

핀란드에서 밤새 크루즈를 타고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여명이 사람들보다 빨리 승객을 반긴다. 크루즈 갑판에 올라 새벽 바람을 맞이하자, 말갛고 고운 해에 눈이 부신다. 유럽의 몇몇 젊은이는 밤새 술을 마신 듯, 풀린 눈동자를 갑판 위로 배회시킨다. 스톡홀름은 오슬로와 ‘이란성 쌍둥이’다. 북구의 항구이면서 수도로 대표적인 미항이다. 이곳을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부르는 건 맞는 표현인 셈이다. 수평선 너머에 드러나는 도시의 흐릿한 모습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이곳의 역사를 알려면 구시가 격인 감라스탄 지역을 살펴봐야 한다. 유서 깊은 건물 사이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는 옛 유럽 건물 모습에 취한 사진가들의 손놀림이 빨라진다.
봄의 따뜻한 햇살이 북반구의 여러 지역을 관할하고 있지만, 다른 북유럽처럼 스톡홀름 역시 예외다.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 힘들 만큼 추운 날씨다. 눈이 빚어낸 은반의 땅에는 요정 같은 아이들이 행복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아이가 동네 어귀에서 썰매를 타고, 어른들이 눈밭을 달리는 모습이 낯설다. 우리라면 감기 걸린다고 말릴 만한 환경에서 이들은 행복해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그림들이다.
오슬로·스톡홀름=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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