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죄짓고 숨을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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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 논설위원 |
헌정 사상 전직 대통령이 사법처리된 것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육사 동기생인 전 전 대통령보다 보름 전쯤 앞서 영어의 몸이 됐다.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권력을 휘둘러 재벌기업으로부터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게 그의 죄목이었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뇌물을 그렇게 밝히다 옥살이를 하게 됐으니 국민에게 허탈감과 자괴감을 안겨 줬다. 눈곱만큼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분노와 치욕이 뒤섞인 사건이었다.
지금 또다시 국민적 분노를 폭발케 할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아들 건호씨는 이미 검찰 조사를 받았다. 형 건평씨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지가 벌써 4개월이 넘는다. 심복인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이광재 민주당 의원 등 측근 가운데 상당수도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검찰의 칼날은 이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그것도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자신 있다는 손놀림이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결과 이들이 받은 뇌물은 수십억원에 이른다.
노 전 대통령에게 지금 필요한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변명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보인 가장 비굴한 행태는 돈을 받은 건 자신이 아니라며 그 책임을 부인에게 떠넘기려 한 점이다. 설혹 부인이 받았다 해도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국민에게 사과하는 게 옳았고 모양새도 좋다. 청와대가 집단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꼬리 자르기를 하려고 이리저리 변명하는 부부의 모양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내놓은 ‘골목성명’보다 더 치졸하고 실망스럽다. 더구나 엊그제에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안뜰을 돌려 달라”고 봉하마을에 내려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취재진에게 요청했다. 재임 시 언론을 못마땅해 한 나머지 ‘언론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기자실에 대못을 박게 한 그였다. 그들이 불철주야로 카메라와 씨름을 하며 진을 치고 있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치욕의 외출’을 하는 순간을 담기 위해서다. 불평을 하기 전에 못된 짓을 안 했으면 될 일인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5공 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져 ‘뜨게 된’ 변호사 출신의 인물이다. 그러기에 부정하게 뇌물을 받을 수 없음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도 남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도덕과 정직을 강조하고는 자기에겐 적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국민이 과거 두 대통령의 사례보다 비웃고 더욱 분개하는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는 뇌물혐의만이 아니다.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 노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대한민국 국정을 책임졌던 대통령답게 기백 있고 자신 있게 봉하마을을 나서라.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노 전 대통령이 사법처리될 경우 이 나라는 세 명의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는 국가적 수치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의 마음 또한 착잡하고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죄를 짓고는 지구상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다는 세상 이치가 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은가. 현 정권도 하늘의 뜻을 가슴속에 늘 새기고 국정에 임해야 한다.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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