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로 50년을 북한에 억류돼 있다 2000년 중국을 거쳐 입국한 유영복 6·25국군포로가족회 명예회장(81·사진)은 “남한에 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국민들이 국군포로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50년 약속 지키고 돌아온 용사’(가제)를 6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에는 6·25전쟁에서부터 국군포로로서 살아온 50년, 탈북 과정, 남한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담긴다.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하면서 국군포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돼 16년이 흘렀지만 뭐 하나 달라진 게 없어요. 북한은 여전히 국군포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우리 정부는 소극적이죠. 솔직히 이젠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국군포로를 잊어서는 안 되겠기에 뭐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이 책은 북한에 남아 있는 전우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류 내내 아오지 탄광에서 보낸 유 회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탈북했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돌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후 며칠이 지나도 국군포로 송환은 얘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고향 땅도 못 밟아보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유 회장은 무작정 중국 보따리상을 따라나섰다.
“남북정상회담 후 남한에 있던 미전향장기수들을 북한으로 보냈잖아요. 그때 국군포로를 한 명이라도 데려왔어야 했어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이렇게 방치하면서 어떻게 애국심, 나라사랑을 말할 수 있겠어요.” 유 회장은 국가에 서운한 감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7월 남한에 온 유 회장은 50년간 헤어졌던 아버지와 여동생을 만났다. 당시 93세이던 유 회장의 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한 아들을 만난 후 6개월 뒤에 눈을 감았다.
현재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 정착해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 회장은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며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면 ‘유골이라도 남한 땅에 묻어 달라’고 말하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 60주년 기획팀= 신진호·안용성·조민중·조현일·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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