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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60>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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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27 22:43:41 수정 : 2010-09-27 22: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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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은 바람직한 ‘삶의 길잡이’ 담은 철학
한국인들 ‘뿌리’의 의미알고 행복 찾아야
추석 연휴는 끝났지만 가족과 하나 된 느낌은 여전하다. 조상의 산소와 일가 친척을 찾은 뒤 가졌던 고마운 마음도 그대로다. 그런 마음이 깊어지고 ‘뿌리’의 의미를 알게 되면 삶은 그만큼 가치 있게 된다. 한국인은 ‘뿌리’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기동(59)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를 만난 이유다. 이 교수와 인터뷰하려고 마음먹었던 시기는 꽤 오래됐다. 유학을 쉽게 설명하는 이 교수의 ‘뿌리론’을 인지한 때는 그보다 한참 앞선다.

◇공자의 ‘인’사상은 약자를 동정하고 강자에게 대드는 한국인의 마음과 닮았다.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는 “유학의 원조인 공자사상의 핵심은 우리 민족의 정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따뜻한 마음씨”라며 “이별에 제대로 대처 못하고, 나누기를 잘 못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한가족 의식과 고운 마음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제원 기자
#마음이 중심되는 시기에 필요한 동양철학


성균관대 다산경제관에 있는 그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박사과정에 있는 제자와 이 대학 최영록 홍보전문위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다른 자리에 비해 진중하면서도 세심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지만 인터뷰는 시작부터 경쾌했다.

이 교수는 “우리 민족에겐 ‘한민족 정서’가 있어서 이 자리에 함께한 분들 모두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의 말 뜻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민족은 한 가족, 한 나라이다. 형제는 부모 밑에서 남이 아니고, 조부모로 넓히면 사촌도 하나가 된다. 단군 밑에서는 모두가 가족이다. 그의 말을 듣다 보니 인터뷰 자리에 모인 사람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유학 전공자가 말하는 뿌리론은 무엇일까.

“먼저 인류의 역사를 살펴봅시다. 역사는 ‘마음’과 ‘몸’이 끌고 갑니다. 몸이 중심이 된 게 서양철학이었다면, 동양철학은 마음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1세기는 ‘마음의 세기’로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마음은 바로 우리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상을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것은 뿌리를 찾는 것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년초 식물을 볼까요. 겉으로 드러나면서 바뀌는 게 잎이라면, 그 근원에 바뀌지 않고 지탱해 주는 건 뿌리이지요. 그 과정에 당연히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지요.”

몸과 마음, 잎과 뿌리를 연결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동양적인 철학과 의학이 떠올랐다. 동양 철학이나 의학 모두 나누거나 분류하는 것보다는 하나로 세상을 바라본다. 한의학은 내과와 외과, 정형외과 등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몸을 전체로서 보는 동양의 의학에서는 서양의 분류법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학도 마찬가지다. 정치학, 종교학, 철학, 교육학, 경제학 등 근세 서구에서 태동한 학문 분류법을 동양 학문에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 유교(儒敎)를 굳이 특정 학문의 범주에서 바라볼 수 없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유교에 대해 종교 여부나 학문의 범부를 묻는 질문은 우문(愚問)일 뿐이다.

#21세기는 유학의 귀환시대

이기동 교수는 “유학은 바람직한 삶의 길잡이를 담은 철학”이라며 “배우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각각의 입장에 따라 유학(儒學), 유교(儒敎), 유도(儒道)로 부르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설명한다. 유학이나 유교, 유도 모두 뿌리가 같다는 이야기다. ‘삶의 길잡이를 담은 철학’과 ‘종합적인 학문’이라는 설명에서 유학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유교 혹은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경쟁보다는 지혜를 찾는 사회적 분위기가 짙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회복하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엔 유학만 한 가르침이 없거든요. 경쟁 없이는 현대사회를 살아갈 수 없다고 반박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공자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생존한다면 다른 조언을 할 것입니다. 삼성전자 CEO가 논어를 공부한다면 LG전자는 물론 소니나 노키아가 망해야 한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학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무덤덤하게 넘어갔던 생각이 그의 설명을 들을수록 바뀌어 갔다. 이 교수의 예상이 적중한다면 21세기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억압됐던 유학의 귀환시대’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배석한 최영록 홍보전문위원이 “유학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한 우리 대학의 서정돈 총장님도 이 교수님의 유학 강의를 들었다”며 말을 보탠다. 그렇다면, 이 교수의 강의는 국제유학연합회(國際儒學聯合會) 이사장이기도 한 서 총장이 추천하는 강의로 평가해도 될 터이다.

1985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 교수는 “유학은 우리 민족(동이·東夷)의 가슴을 공자의 손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독자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대학·중용강설’에서 시작해 ‘논어’ ‘맹자’ ‘시경’ ‘주역’으로 이어진 ‘사서삼경강설’ 시리즈를 완간했다. 한 명의 학자가 ‘사서삼경’ 해설집 시리즈를 내놓은 것은 동양 학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로 평가받았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경전 전체를 번역할 때는 여러 전문가가 협업을 한다.

학문에 대한 이 교수의 열정도 치열했다. 주역을 번역하면서 ‘괘’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러 날 골똘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시경을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 필요한 시인의 감각을 기르려고 3년 이상 시작(詩作)을 하기도 했던 것은 학계에선 잘 알려진 일화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논어강설’과 ‘맹자강설’ 등은 교수신문의 고전 최고 번역본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서삼경강설 완간과 동인문화원 개원

이 교수가 언론과 일반인에게 각인된 데에는 2001년 출간한 ‘도올 김용옥의 일본 베끼기’ 영향이 컸다. 당시 이 교수는 ‘유학의 요람’인 성균관대 학자답게 도올을 매섭게 비판했다. 도올의 논어 해석에 ‘침묵으로 불편함’을 표시했던 일군의 학자들과 달리, 당시 이 교수는 도올의 재반박을 기대하며 책을 내놓았다. 대중 독자의 시각은 갈렸지만, 유학계 내부의 다수는 그의 입장을 지지했다. 당시 그의 도올 비판을 요약하면 이렇다. ‘도올 논어’가 일본 학자인 시라카와 시즈카와 오규 소라이 등의 학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공자를 무당 아들로 주장하는데, 이는 1972년 처음 발간된 시라카와 시즈카의 ‘공자전’(중앙공론사)의 내용을 그대로 담았다.

인터뷰 현장을 지킨 제자인 박사과정 성동권(31)씨도 실은 이 교수의 도올 비판에 항의하면서 사제의 연을 맺었다. 법학도였던 성씨는 이 교수의 도올 비판에 반박하는 편지를 보냈던 게 인연이 돼, 이제는 스승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후학의 길을 걷고 있다.

유학의 시대를 예견하며 그가 뜻을 같이한 이들과 함께 동인문화원(www.donginuni.com)의 전신인 동인서원을 세운 때는 1992년.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난다면, 이곳에서는 일반인을 상대로 유학 경전을 강의하고 있다. 일본 유학과 여러 학술활동을 통해 동북아 3개 나라 중에서 한국의 철학적 수준이 가장 높다고 여겼지만, 한국인이 저술한 책이 많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해 세운 문화원이다. 캠퍼스는 물론 동인문화원을 찾는 이들의 평가는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긍정적이다. 상식과 교양을 위해 수강한 유교 강설에서 “행복감을 느꼈다”는 이도 있었고, “방황을 멈추고, 길을 찾았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여럿이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유학을 공부한 이 교수는 시리즈 ‘한중일 삼국의 정체성을 찾아서’를 연이어 내놓을 계획이다. 지난해 개정판 ‘한마음의 나라, 한국’을 출간한 데 이어 ‘힘과 격식의 나라, 일본’, ‘두 얼굴의 나라, 중국’의 원고를 곧 마무리할 예정이다.

bali@segye.com

■ 이기동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 교수. 1951년 경북 청도 출생. 성균관대학교 유학과 및 유학대학원 졸업. 일본 쓰쿠바대학 철학사상연구과 박사학위 취득.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과 유교문화연구소장을 지냈다. 동양철학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강설’이라는 알기 쉬운 현대적 설명으로 풀어내고 있다.

■ 저서

‘논어강설’ ‘맹자강설’ ‘주역강설’ ‘동양 삼국의 주자학’ ‘논어에서 얻는 지혜’ ‘한국의 위기와 선택’ ‘한마음의 나라, 한국’ ‘곰이 성공하는 나라’ ‘동양 삼국의 주자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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