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자 러 두둔·우크라는 압박
우리 경제·안보 모두 위태로워
대선 주자들, 난국 타개책 있나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There’s a new sheriff in town).” 지난 14∼16일 독일이 주최한 뮌헨안보회의에서 최대 화제로 떠오른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의 말이다. ‘새 보안관’이란 모두가 알다시피 밴스의 상관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동맹을 무시하고 미국 우선주의로 일관하는 트럼프의 행태에 불만을 드러낸 유럽 국가들에게 ‘군말 말고 따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1984년 8월생으로 이제 마흔에 불과한 미국 ‘2인자’에게 유럽의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한 방 제대로 얻어맞았다.
일종의 관용구인 ‘마을의 새 보안관’은 동부 13개 주에서 시작한 미국이 서부와 남부로 차츰 영토를 확장해나간 역사에서 비롯한 표현이다. 무법자들이 판치는 서부 개척지 마을에 용기와 인품에 사격술까지 겸비한 보안관이 새로 부임해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할리우드 서부 영화의 대표적 서사 구조 중 하나다. 애초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는 말은 악당들에게나 할 소리이지 선량한 주민들에게 외칠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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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고려한다면 트럼프가 지구촌 보안관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듯하다. 문제는 그가 전임 보안관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국제개발처(USAID)라는 정부 기관을 사실상 폐기했다. 못사는 개발도상국 국민을 돕는 사업 따위는 무가치하다는 철학이 깔렸다. 트럼프는 또 중국은 물론 우방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고율의 관세 부과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는 조만간 유럽연합(EU)과 한국 등으로도 확대될 전망이다. 더는 미국에 수출해 큰돈을 벌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지난 21일 우리 기업인들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만났다. 러트닉은 “한국의 개별 기업이 미국에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 이상 투자하면 미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관세를 피하고 싶거든 미국에 공장을 짓고 거기서 상품을 만들어 미국인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라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10억 달러 넘게 투자하는 기업에 각종 심사 기간 단축 등 이른바 ‘패스트트랙’ 혜택을 부여할 방침이라고 한다. 과거 민원인들이 공무원한테 “일 좀 빨리 처리해 달라”며 급행료를 바치던 관행이 떠오를 지경이다.
트럼프 집권 후 가장 충격적인 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태도다.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인데 트럼프는 되레 우크라이나 지도자를 ‘독재자’라고 부르며 당장 싸움을 끝내라고 독촉했다. 3년의 전쟁 기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을 회수하겠다며 “희토류 등 광물 자원을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정작 피해자인 우크라이나는 쏙 빼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하고만 평화 협상 개시에 나설 태세다. 영국·프랑스가 이의를 제기하자 “너희가 그동안 전쟁 종식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고 쏘아붙였다.
이를 지켜보는 한국 국민은 그저 불안할 뿐이다. 경제야 그렇다 쳐도 안보만큼은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트럼프는 최근 합참의장을 비롯한 미군 대장 3명을 전격 경질했다. 이들은 과거 주한미군에서 각각 전투비행단장, 해군 사령관, 유엔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미군 지휘부에 그런 지한파 장성이 있어 ‘한·미 동맹이 굳건하구나’ 여겼는데 참으로 한숨만 나온다. 트럼프가 일부러 주한미군 출신을 노린 것은 아닐 테지만,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마을에 새로 온 보안관이 뭔가 수상하다면 주민들로선 시급히 자구책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다. 마침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모두 끝나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헌재 결정을 예측하긴 힘드나 조기 대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저마다 대통령이 되길 꿈꾸는 여야 지도자들에게 당부한다. 향후 몇 달 동안 정쟁은 일절 접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한국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 오직 그 고민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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