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경 소설가 |
선생님이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저는 선생님 뒷모습만 보고 있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해 들어온 빛이 성당 공간을 가로질러 하필 선생님 어깨에 닿아 있었지요. 다소 길다 싶은 시간 동안 기도는 계속되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는 낯선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 장면이 사진처럼 선명히 내면에 새겨져 그 후 생의 어떤 순간마다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 사진에 생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 압축되어 있어 혼돈이나 교만의 순간마다 제가 무의식적으로 그 사진을 꺼내보며 방향을 찾아냈다는 사실은 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은 제 삶의 모델이었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던 초기부터 저는 “박완서 선생님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전까지 제가 읽었던 대부분의 소설들과는 달리, 선생님 작품은 여성의 시각으로 본 여성의 삶을 여성의 언어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을 기억할 때도,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도 선생님은 여성의 관점을 견지하셨습니다. 지금 이곳의 여성 삶을 묘파하면서 꺼내보이는 진실은 너무 아파서 그 속에서 여성 작가로서의 길을 다시 더듬어봐야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단아한 태도, 청량한 음색으로 “나는 페미니스트예요”라고 말씀하시면 그 울림은 고요히 멀리 퍼지는 힘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이 있었기에 후배 작가들이 마음껏 그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차로 모셔다 드리겠다는 후배들을 뿌리치고 떠나며 “나는 걷는 거 좋아해요”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뵌 후 저도 걷기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매일 아차산을 산책하신다는 말씀을 들은 후 저도 매일 동네 뒷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매일 오전에 A4 용지 한 장 분량씩 글을 쓰신다는 말씀을 들은 후 저도 그와 같은 글쓰기 습관을 몸에 익혔습니다. “돈을 가장 가치있게 쓰는 방법은 여행 같아요”라는 말씀을 들은 후 저도 간간이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의 모든 소중한 습관들은 실은 선생님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런 선생님께서 떠나셨다니, 저는 문득 생의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동안 무기력하고 방향 감각 없는 나날을 보낼 것 같습니다. 그보다 더 아픈 사실은 제가 얼마나 선생님을 사랑했는지, 선생님이 계셨다는 사실에 감사했는지 한 번도 말씀드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는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는 죄송함까지 안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무력감이나 죄송함조차 남은 이들의 이기심일 것입니다.선생님께서는 부디 이 땅의 모든 것을 털어버리시고 밝고 환한 곳으로 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안녕히, 안녕히 가십시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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