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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없는 카이스트, 성적만이 최고였다

입력 : 2011-04-09 01:39:11 수정 : 2011-04-09 0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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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서남표式 교육개혁’
“꿈꾸는 대학생이 되고 싶어요” 학생회 게시판에 슬픈 하소연
“대학사회에 모처럼 변화 바람 서총장 개혁 매도 안돼” 지적도
올 들어서만 4명의 학생이 자살한 대전 카이스트(KAIST) 교정에는 8일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캠퍼스의 학생들은 말을 잃었고 얼굴빛은 어두웠다. 캠퍼스에 봄은 찾아왔지만 학생들 마음은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시끄럽다고 옆 도서관에서 항의까지 받던 학생회관 동아리방의 불은 꺼져 있어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감돌았다. 총학생회 사무실 앞 서남표 총장에게 전달할 건의사항을 적은 게시판에는 ‘총장님 살려주세요’ ‘저희는 꿈꾸는 대학생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어 학생들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늠케 했다.

과학고 출신 김모(20)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보다 대학에 와서 성적 부담이 더 커졌다. 성적이 안 나오면 장학금이 잘리는데 그건 일종의 낙인이고 꼬리표로 남게 돼 부담이다”라고 말했다.

“자살이 계속 발생하니 죽음이 참 가깝게 느껴진다”는 과학고 출신 이모(19)씨는 “과학고나 영재학교를 졸업하고 일반고 수석을 한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성적 때문에 ‘벌금’을 내다보니 굴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성적이 부담돼 휴학신청을 하는 학생이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2006년 서 총장 취임 이후 경쟁을 강조하는 강도 높은 교육개혁으로 대학가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카이스트가 개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교수 테뉴어(정년 보장) 심사 강화, 영어수업제, 기부문화 확산 등 서남표식 개혁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묵념하는 서 총장 올해 들어서만 카이스트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운데 서남표 총장이 8일 총학생회와의 1차 간담회에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서 총장은 오는 12일 2차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대전=연합뉴스
올 들어 자살 학생이 잇따르자 서 총장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학생들이 학업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치유할 대책을 마련 중이었다. 가장 큰 반발을 샀던 성적에 따른 징벌적 수업료 징수제와 영어수업제 등을 완화하는 방안이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 학생 희생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수업료를 완전 폐지하겠다며 전격적으로 백기를 든 것이다. 서 총장이 글로벌화의 필수코스로 고집하던 완전 영어수업제 역시 상당한 변화를 예고했다. 카이스트는 오는 8월까지 학사운영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대학 개혁의 상징인 서 총장의 개혁 프로그램이 이처럼 수술대에 오른 것은 ‘소통 부재’와 국내 대학 교육의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이 원인으로 꼽힌다.

카이스트의 한 교수는 “서 총장이 개혁을 두려워하던 대학 사회에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지나친 성과주의에 매몰돼 구성원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아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는 “서 총장이 MIT(매사추세츠공과대) 등 서구 명문대학의 모델을 서둘러 이식하려 해 구성원들의 반발과 피로감이 누적됐다”고 지적했다.

모처럼 마련된 개혁의 토대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보직교수는 “개혁이 연착륙하도록 구성원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교수는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과 비교했을 때 카이스트의 학업강도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다”며 “학생 자살사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서 총장의 개혁을 근본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패배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대전=임정재 기자 jjim6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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