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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마지막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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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9-22 22:27:19 수정 : 2011-09-22 22: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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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과 감각에 호소하는 멜로디 어느 수준을 넘어선 원작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도전이지만 결국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실존주의 작가 폴 보울즈의 걸작 ‘마지막 사랑(The Sheltering Sky)’을 비교적 큰 스케일로 완성해 냈다. 게다가 원작자 폴 보울즈는 직접 영화에 출연해 내레이션까지 도와주고 있다.

윌리엄 버로우즈가 인터뷰에서 이 소설의 위대함에 대해 직접 언급해 책을 구해 보기도 했는데, 등장인물 포트의 환각적 혼수상태를 비롯한 몇몇 놀라운 묘사가 영화에는 종적을 감춰 조금은 아쉬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 무렵, 작곡가 포트와 극작가 키트 부부는 뉴욕에서 아프리카 북부로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난다. 결혼 10년차, 권태기에 진입한 이들에겐 불 같은 사랑도 꿈도 이미 퇴색해 버린 지 오래다. 오지에서 뭔가 잃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는 달리 오히려 둘의 관계는 점차 지리멸렬해져 간다.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위안을 얻으려 하지만 이 끝없는 사막 안에서 가혹한 운명은 좀처럼 이들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살아남은 자는 사랑, 그리고 인생의 고독 한가운데서 길을 잃는다.

문명사회로부터 이탈한 남녀의 파멸을 서구 이방인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베르톨루치의 오랜 파트너 비토리오 스트라로가 만들어낸 실제보다 더욱 붉은빛을 띠는 놀라운 색채, 그리고 음영이 풍부한 영상을 바탕으로 문화적 충돌과 인간, 그리고 인생을 얘기하고 있다. 비교적 러브스토리는 동떨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관능적이다.

데보라 윙거와 존 말코비치가 사막의 벼랑 끝에서 함께하는 장면은 유독 장엄하고 아름답다. 이는 직설적 메타포(은유)이기도 했다. 건조한 듯 끝없이 펼쳐지는 압도적인 사막의 정경은 인간의 상실감이 가진 그것과도 무척 닮아 있었다. 이 사막은 현대인의 얄팍한 이성 따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삼켜 버린다.

베르톨루치와 ‘마지막 황제’ 그리고 ‘리틀 부다’를 함께 해온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은 유독 안타까운 선율을 담고 있었다. 이는 직접적으로 보고 듣는 사람의 감성과 감각에 호소하는 멜로디였고 영화를 공감시키기 위한 선동장치였다. 이 유명한 메인 테마의 피아노 버전 또한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내한공연 당시 연주되기도 했다. 가슴에 직접적으로 닿는 본 사운드트랙을 통해 결국 사카모토는 골든 글러브 음악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사카모토의 테마 이외에도 폴 보울즈가 직접 녹음한 모로코 여인의 목소리와 민속음악들, 영화 시작에 쓰이는 라이오넬 햄튼의 비브라폰 연주곡 ‘미드나잇 선’, 카페에서 흐르는 샤를 트레네의 곡 또한 사운드트랙은 알차게 수록해 내고 있다.

허무와 망각에 관한 외로운 사색이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인생을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 생각한다’는 영화의 마지막 대사에서도 언급되듯 인간은 습관처럼 망각한다. 심지어는 우리네 인생에 결말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정작 중요한 게 뭔지조차 잊어버린 채 허무함에 휩싸여 슬퍼만 하기에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만일 사랑이 인생의 이유라면 과연 사랑받았던 것을 잊는 것과 사랑했던 것을 잊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서글플까.

책은 국내에 세 번 번역됐고, 처음 번역됐을 당시의 제목은 ‘모두가 고독한 사람들’이었다.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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