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시후(34)가 첫 영화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내달 개봉 예정인 ‘내가 살인범이다’(감독 정병길)에서 그는 공소시효 만료 후 ‘스타’가 된 연쇄살인범 이두석 역을 맡아 겉과 속을 대체 알 수 없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표현해냈다.
첫 영화, 게다가 데뷔 때부터 꿈꿔오던 사이코패스 악역. 이 두 가지 매력에 끌려, 지난 해 드라마 ‘공주의 남자’가 끝나자마자 이틀 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갔다. 배우로서 새로운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시나리오의 힘에 이끌려 덜컥 출연 제의를 수락하고 말았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세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사이코패스를 막상 연기하려니, 어디 상담할 데도 없고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감독과 많은 상의 끝에 시종일관 미스터리하면서도 모호한 성격의 이두석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이두석 캐릭터 자체가 묘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이에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이 안 되는 인물이죠. 평상시 저한테도 친구들이 ‘넌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니?’라고 물을 때가 많은데, 그런 모습을 표현하면 되겠더라고요.(웃음)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왜 굳이 대중 앞에 나타났는지, 참회하려는 건지 반성하려는 건지, 혹은 다른 뭔가를 얻기 위한 건지 관객들이 보는 내내 의문을 갖고 집중할 수 있도록 포인트를 맞췄어요.”
“처음에는 그냥 감독님이 ‘액션에 힘을 좀 주시는 구나’라고만 생각했죠. 막상 촬영에 들어가 보니, ‘설마 배우가 실제로 다할까’란 생각이 들었던 신도 정말 다해야 되더라고요. 그만큼 고된 촬영의 연속이었죠. 안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여서 나름 열심히 하긴 했는데, 연기하는 내내 ‘원래 영화는 이런 건가?’ ‘이게 맞는 건가?’ 머릿속은 계속 복잡했어요. 나중에야 정재영 선배님이 ‘(영화판이) 사실은 이렇게까지는 안 힘든데, 이번 영화가 유독 그랬던 거야’라고 말씀해주시더군요.”(웃음)
하지만 그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액션신, 추격신 등을 제치고 가장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수영장신’이었다. 한겨울, 열장치 고장으로 인해 차가운 물이 담긴 수영장에서 다이빙하는 장면을 18시간 가까이 찍어야 했던 것. 박시후는 “누구라도 그 상황이 되면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라면서 “그래도 노출신인데 몸 관리한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나중에는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더 억울한 건 당시 고생해서 찍은 신이 실제 영화에서는 30초 정도밖에 쓰이지 않았다는 점. 영화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며칠 동안 굶었는데 바스트 샷(머리에서 가슴까지)만 나온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께 슬쩍 풀 샷(전신)도 좀 넣어달라고 건의(?)드렸단다.
“저도 참 내성적인데 감독님도 만만치 않게 내성적이셔서 촬영 내내 답답한 마음이 좀 있었어요. 하지만 포인트를 짚어주실 때는 또 얼마나 예리하신지 그때 감탄했죠. 제일 먼저 촬영장에 나와 스태프와 배우들을 살뜰히 챙기고, 뚝심 있게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을 보니 신뢰가 가더라고요.”
영화는 이제 시작이만, 박시후는 지난 해 KBS 2TV 드라마 ‘공주의 남자’(공남)에 출연하며 배우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SBS·2010) ‘역전의 여왕’(MBC·2010) 등에 출연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면, ‘공남’에 이르러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게 된 것. 이에 ‘공남’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의 인기는 결코 ‘하루 아침’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무명 시절에는 촬영장에 팬들이 찾아와 응원해주는 연기자들이 정말 부러웠다고. 한 작품, 두 작품 꾸준히 하다 보니 그런 그에게도 찾아와주는 팬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자기 시간을 쪼개 촬영장까지 온다는 게 참 힘든 일이잖아요. 너무 고맙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는 저의 팬들이 단체로 출연까지 해주셨어요. 극중 ‘이두석 팬클럽 회원’으로 나오는데, 한 겨울에 오랜 시간 떨었음에도 오히려 배우들 고생한다고 후기까지 남겨주셨더라고요. 그때 정말 감동했어요. 진짜 가족 같은 마음 아닌가요.”
박시후는 현재 ‘내가 살인범이다’ 홍보와 연말 방영 예정인 드라마 ‘청담동 앨리스’(SBS)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영화에서는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을 연기했지만, 앞으로 판타지 멜로나 감성 멜로물에 도전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연기자가 됐을 때부터 큰 목표를 정해놓지는 않았다는 그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정진하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그의 목표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인정받는 배우가 되는 것. 그 꿈이 그리 멀지는 않아 보인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한윤종 기자 hyj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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