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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칼럼] 트럼프 vs 하버드, 주눅 든 우리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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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0 23:41:45 수정 : 2025-04-20 23: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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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부·대학, 자율성 놓고 충돌
이념 대리전 양상 불구 부러워
우리 대학, 그간 맹종 행태 보여
과감히 자율적 주체로 거듭나야

초일류 대학 하버드가 트럼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발단은 트럼프의 ‘몽니’였다. 교내 반유대주의 세력을 척결하지 않으면 재정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불순 세력 소탕에 방해가 되니, 교내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고 다양성 정책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하버드대 총장은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부당한 압력에 굴복할 수 없다고 했다. 하버드대가 어떤 곳인가. 1636년도에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기부금 자산이 76조원에 달하고, 대통령 8명을 배출한 초명문대학이다. 수많은 한국인이 하버드의 정기를 받으려 설립자 존 하버드 동상의 발끝을 쓸어내렸다. 금빛으로 변한 발끝이 말해준다. ‘내가 바로 하버드요’라고.

이런 최강자 둘이 전면전을 벌이니,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들도 갑론을박하는 중이다. 보수층은 하버드에게 괘씸죄를 묻는다. 신성한 학문의 전당으로 여겨 면세 지위까지 주고 수조원의 이득을 매년 안겼는데 갈수록 ‘좌경화’로 치달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제는 거인 ‘로빈슨 크루소’의 손발을 묶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랐다. 진보층 견해는 다르다. 학문의 자유를 옥죄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하버드 입장을 변호한다. 결국 트럼프와 하버드의 전면전은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 이념화의 대리전으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누가 승자가 될까.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이 논란을 보면서, 우리의 대학을 떠올리게 된다. 솔직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의 대학은 어떤 모습인가. 자율은커녕 유순을 넘어 맹종에 가까운 행태로 그간 고등교육의 역사를 써왔다. 입학 정원, 등록금, 학과 통폐합, 총장 인사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물론 정부의 재정 지원과 강력한 그립 쥐기가 입시 공정성 확보, 이공계의 도약, 국가장학금 지급과 같은 많은 성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율보다는 타율, 혁신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한 현재 우리 대학의 자화상은 어쩌면 국가와 대학 간 애초의 잘못된 관계 정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의 엘리트 대학들이 미국식 정치 양극화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우리의 대학들 역시 정치적 이념 전쟁의 유탄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진보 측은 혁신은 무시한 채 지방 대학 살리기와 공공성 강화에 몰두했고, 보수는 국가 전략을 명분으로 대학 줄 세우기에 앞장섰다. 두 진영이 합의한 건 거의 없다. 15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 정도가 그나마 찾아볼 수 있는 드문 접점일 뿐이다. 이 유례없는 ‘대학 억누르기’의 부작용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바이다. 15년 전 내 조교수 초봉과 지금 조교수 초봉이 같다니, 그저 말문이 막힐 뿐이다.

반기를 든 하버드를 보며, 우리 대학도 정부에 맞서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이념 편향이나 비대한 괴물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지금은 무엇보다 더 과감하고 자율적인 주체로 거듭나야 할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국가 발전의 추진 동력이 결국 대학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자율’이란 어떤 견제도 없이 무한 자유를 누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 개도국의 위치에 머물다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국가가 그리는 전략적 밑그림은 여전히 중요하다. 개도국의 오솔길을 벗어나는 길은 이 전략적 리드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대학의 자율성은 ‘협력하는 자율성’이어야 한다. 여기에 리더로서의 책무가 더해져야 한다. 의학, 공학, 바이오 등 이미 대표 주자로 인정받은 첨단 분야는 학문의 선순환을 이끌 책무를 가져야 한다. 인공지능 교육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는 일이 한 사례가 될 것이다.

보수의 전략 산업 연계든, 진보의 공공성 강화든 그 어느 하나가 정답일 수는 없다. 국가가 큰 방향을 제시하고, 대학은 충분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소외되기 쉬운 인문 사회 분야에는 자율 연구를 위한 펀드를 마련해 문제 해결뿐 아니라 ‘문제 발굴’에 나서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연구개발과제(RFP)의 지침은 최대한 단순화하고, 그 내용을 채우는 일은 연구자에게 맡기면 어떨까. 방향은 정부가 정하되, 질문은 연구자가 던질 수 있도록 말이다. 트럼프와 하버드의 으르렁거림을 보며 우리가 취해야 할 교훈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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