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살다간 이윤기(1947∼2010)에 대해 말하는 중이다. 국내에 그리스 로마 신화 붐을 일으켰고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명품을 우리말로 옮겨 ‘한국 최고의 번역가’로 이름을 날렸다. 역서만 200여종이 넘는다. 젊은 시절에는 한 달에 한 권꼴로 냈고, 1년에 200자 원고지 1만5000장과 파커 만년필 두 자루를 소모할 정도였다.
번역가 이전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였다. ‘나비넥타이’나 ‘뿌리와 날개’ 같은 단편들은 매혹적이다. 고등학교를 잠시 다니다 검정고시로 신학대학에 갔다. 그마저 포기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뒤 베트남전까지 다녀온 입체적인 삶을 살았다. 동서양의 인문학을 넘나드는 박람강기(博覽强記)와 현실 체험의 밀도까지 갖춘 그의 서사는 교양과 낭만을 아우르는 매력을 지녔다. 오페라 아리아에서 판소리와 뽕짝까지 부르며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가인이었다.
그는 수백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꾼 양평의 집필실에 스스로 갇혀 죽음을 맞았다. 어제가 그의 수목장을 치른 2주기였다. 이를 계기로 그의 자전적 삶이 담긴 장편소설 ‘하늘의 문’을 열린책들에서 재출간했다. 3권으로 나왔다가 절판돼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던 이 소설은 1085쪽의 방대한 1권 분량으로 단장됐다. 이윤기만의 사유와 체험과 교양을 만끽할 밀도 높은 소설이다.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죽음과 직면한 이윤기의 태도를 두고 “세상에 이보다 더 심한 똥폼이 있을까?”라고 투정하면서 “윤기 형은 조르바의 아우쯤”이라고 발문에 썼다. 소설 속 조르바도 끝까지 죽음을 응시하며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었다.
뽕짝 한 가락 구성지게 불러제끼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조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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