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가 시 공부를 시작한 건 세 아이를 다 키우고 50대로 접어들던 1998년. 그는 “늦게 출발해 시의 발아점까지 달리기엔 숨이 찼다”며 “느닷없는 당선 소식으로 마음에 일어난 소중한 불꽃, 시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태우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를 쓰게 만들까. 환갑이 넘어도 문학에 대한 꿈을 접지 못하는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중견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혜선(62·사진)씨의 신작 평론집 ‘문학과 꿈의 변용’(푸른사상)은 이 같은 물음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우리는 시를 통해 꿈을 꾼다”고 전제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문학의 출발선이 바로 ‘꿈꾸기’다. 늘 현실이 불만스러운 인간은 꿈꾸기를 통해 불가능한 현실을 초월하고, 결핍의 상황을 넘어 이상적 세계를 만든다. 이씨의 표현에 따르면 시인은 “언어로 세계를 창조하는 신(神)”이다.
모든 꿈이 다 아름다운 시로, 바람직한 문학으로 승화하는 건 아니다. 언어라는 매개체가 중요하다. 시인의 꿈꾸기가 언어의 옷을 입고 어떤 방법으로 ‘변용(變容)’되는지에 시의, 문학의 성패가 달려 있다. 저자는 “언어를 통한 시적 변용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때 비로소 시는 독자에게 감동과 기쁨과 깨우침을 주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적 변용’이란 곧 창작이다. 이씨가 ‘제 살 파먹기’에 비유할 만큼 창작의 고통은 깊고 또 세다.
책은 윤동주·서정주·조병무·김원길·송세희·남민옥·이춘하·정정남·권희자·백준호 등 여러 시인의 작품세계를 파고든다. “정신의 꽃가루와 꿀을 모아 영혼의 즙을 짜 언어로 표현하는” 시인들 덕분에 우리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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