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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의 7080사람들] '무정블루스'의 가수 강승모

입력 : 2013-01-27 14:13:16 수정 : 2013-01-27 1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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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쉘브르’ 무대서 데뷔, 조용필 모창으로 이름 알려져
‘무정블루스’ 로 스타덤 올라…`후속곡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움

가수 강승모. 조용필보다 더 조용필 같다는 말을 듣는 가수. 그만큼 그는 발성 톤이나 음색, 창법이 조용필과 비슷하다. 주변에서는 조용필과 비슷해서 더 크지 못한 가수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조용필을 존경한다. 지난해 30주년 기념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늘 ‘무정 블루스’만이 따라 다닌다.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대표곡이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중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해야 한다고도 목청을 돋운다.

지난해 9월 19세 연하와 결혼을 하고, 12월 아들을 얻었다는 가수 강승모를 ‘강상준의7080’이 찾았다.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여의도 KBS별관. 때마침 매주 일요일 밤에 방송되는 <콘서트 7080> 녹화를 앞둔 시간이었다. 그는 자신을 ‘보라돌이 강승모’라고 소개했다. 팬카페 이름도 ‘보라돌이 강승모’란다. 유심히 살피니 요즘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모히칸 스타일에 찢어진 청바지와 워커가 온통 보라색이었다. 그의 눈에 30년 연륜의 깊은 카리스마가 서렸다.

“대중의 다양성 생각하면 순위 매기는 음악프로 비합리적”
“추억 선사하고, 자기 음악 추구하는 뮤지션으로 기억되길”

―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저는 변함없이 항상 클럽에서 연주하고 있어요, 음악이 생활이고 인생이니까요. <콘서트 7080>에는 2년 만에 나오게 됐습니다. 재작년에 천안함 포격 당시 출연 요청이 들어왔었는데 안 좋은 분위기에서 노래하기가 어려워 고사했었죠. 작년에는 데뷔 30주년 콘서트 준비로 바빠서 방송 출연을 줄곧 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나오게 됐어요.”

― 동안인데 무슨 비결이라도.

“제가 동안이에요? 저 원래 어려요.(웃음) 음악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동안인 것 같아요. 저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 실제 나이를 말하면 놀라니까요. 그렇게 안 보인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구요. 어쨌든 저를 어리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수 강승모’ 하면 명동 쉘브르가 떠오르는데 그곳에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제가 만리동 고개 배문고등학교를 나왔는데요. 방과 후에 서울역, 남대문을 지나 명동까지 매일 걸어서 다녔는데 명동 중심가에 ‘쉘브르’라는 클럽이 있었어요. 나비소녀 김세화를 비롯해 권태수, 이태원 선배 등 유명한 선배들이 쉘브르에서 공연을 하셨지요. 클럽에 걸려 있는 그분들 사진을 보면서 꿈을 키웠어요. ‘나도 성인이 되면 반드시 저곳에서 노래를 하겠다’라는 꿈. 가난한 시절, 그게 삶의 낙이었죠. 아참, 주병진 씨도 쉘브르 출신이에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쉘브르 이종환 선생님께 노래 심사를 받았어요. 오디션 당시 불렀던 노래가 송창식 선배의 ‘가위 바위 보’와 이은하 선배의 ‘겨울 장미’였어요. 일반인들이 즐겨 부르지 않던 곡을 선곡했는데 바로 합격했죠. 그래서 쉘브르에서 음악을 시작했죠. 

당시 저는 여자노래를 참 즐겨 불렀어요. 특히 심수봉 선배 노래를 많이 불렀죠. 명동 쉘브르에서 노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자부심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악생활을 시작했으니까 남들이 대학에 합격한 것과 다를 것이 없었죠. 그 정도로 유명한 클럽이었어요. 제가 노래할 때 같이 노래한 분들이 남궁옥분, 박강성, 최성수 씨 등이에요. 다들 무명생활이었습니다. 오늘이 10월 31일이네요. ‘10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랫말로 아주 유명한 이용 선배, 당대 최고의 가수 조용필 선배도 같이 활동했었어요. 조용필 선배와 함께 활동을 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 무명시절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1980년에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가수 조용필 선배가 큰 인기를 끌었어요. 물론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곡이 있었지만 ‘창밖의 여자’가 난리가 났었어요. 그 노래를 잘 따라 부르면서 ‘조용필 모창가수’라고 저도 알려지기 시작했죠. 무명가수 시절에 ‘조용필보다 더 조용필 같은 가수’로 불리곤 했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MBC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조용필 선배와 같은 의상을 입고 풀 샷으로 한 무대에 서서 1절과 2절을 나눠 부른 적도 있었어요. 추억을 이야기하다보니까 그 생각이 나네요.”

― ‘무정 블루스’ 활동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시죠.

“‘무정 블루스’ 음반은 1983년에 나왔어요. 당시에 조용필 선배와 목소리가 비슷해서 조용필의 신곡이 나왔다는 소문도 있었어요. 조용필 선배를 싫어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훌륭한 가수와 비교될 수 있고 견주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인가수로서 영광이었죠. 다른 한편으론 우쭐했고요.

‘무정 블루스’ 활동 당시에는 유선 방송, 지역 방송 프로그램이 많았어요. 유선 차트라는 것도 있을 때였으니까요. ‘무정 블루스’가  차트마다 1위를 하고 잠시지만 조용필 선배의 인기를 감히 넘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한 곡이 임팩트가 있는 것도 좋지만 임팩트가 너무 강하면 웬만한 곡은 묻히는 거 같아요. 요즘 가수 싸이가 ‘강남 스타일’ 이후 어떤 곡이 나올지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 이해가 갑니다. ‘무정 블루스’가 제 음악인생에서 너무나 큰 곡이기 때문에 ‘대를 이을 수 있는 곡이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게 현실이 됐고요.(웃음) 제가 독집만 9개 앨범을 발매했는데 대중들은 ‘무정 블루스’ 한 곡만 있는 줄 아세요. 작년에 3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도 발매했습니다.”

― 곡도 직접 쓰시나요.

“창작 활동은 음악을 시작한 이후 계속하고 있습니다. ‘사랑아’라는 곡도 제가 쓴 거구요. 2008년에 ‘사랑아’, ‘내 눈물 속에 그대’ 앨범을 냈는데 3~4년이 지난 지금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간 공백기에 비하면 지금이 제2의 전성기라고 생각해요.”

― 밴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요.

“음악의 형태는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트로트가수로 알려져 있는 저에게, 제 음악성을 대중에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밴드밖에 없었어요. 저는 원래 스무 살 때부터 선배들과 함께 밴드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직접 밴드를 조직한 적도 있었죠.

밴드가 없는 제 음악인생은 수족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 정도로 저에게 아주 소중합니다. 아티스트는 고집, 자기만의 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닐까요.”

― MR(반주음악)을 사용하지 않던데요.

“MR은 리얼 뮤직과는 괴리가 있어요.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이 연주하고, 부르고, 듣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어렵지만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음악에 대한 인프라가 넓어지니까요.

요즘 대학에 실용음악과 등 학과가 많이 생기고 그 과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모님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는 거 같아요. 그들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음악과 연주, 작품 활동을 통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만큼 어렵거든요. 

MR을 사용하는 것이 리얼 뮤직을 하는 것보다는 쉽겠죠. 하지만 선배들은 다 했던 거예요. 선배들이 꼭 능력이 더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음악을 하려면 자신의 온몸을 던졌던 선배들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만 음악을 하는 좀 더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 결혼이 화제였습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적도 있고.

“작년 9월에 결혼하고 12월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51세 나이에 얻은 아들이죠. 제 아내와는 19세 차이예요. 형님, 누님 하던 분들이 갑자기 장인어른,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거죠.(웃음) 젊은 아내와 사니까 제가 동안이라는 소리를 듣나 봐요.

작년에 결혼할 때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어요. 저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죠. 제가 2대 독자인데 아들이 10개월 됐어요. 첫 아들인 줄 모르고 늦둥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결혼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아들 보는 게 사는 기쁨이지요.”

― 19세 연하의 아내와는 어떻게 만나셨는지.

“‘명동 쉘브르’ 클럽에서 팬과 가수로서 만났습니다. 장모님이 가끔 음악을 들으러 오시곤 했는데요. 그 영향으로 아내가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온 클럽이 바로 ‘쉘브르’였지요. 연애를 13년 동안 했는데 세대 차이가 커서 만남과 이별을 몇 번이나 반복했죠.

만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포기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 같아요. 아내의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해야 서로가 함께 살 수 있다고 봅니다. 혼자 오랫동안 살아온 저로서는 인정하기 쉽지 않은데 열심히 배워가고 있습니다. 스케줄 없는 날은 아기 보면서 종일 집에서 있어요. 집사람이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가까운 곳에 아이와 함께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 아들이 음악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들이 만약에 음악을 한다고 하면 말릴 생각은 없어요. 본인이 원하면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야죠. 그런데 아들이 남을 힘들게 하는 직업이나 고통과 눈물을 주는 직업은 갖게 하고 싶지 않아요. 본인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지 도덕이나 윤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도와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나가수>와 같은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제가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대중음악이라는 것은 등수를 매길 수 없어요. 여자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 노래를 1등에 매기진 않을 거 아닙니까. 반대로 남자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여자노래가 1등이 될 수 없고요. 

고운 목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탁한 목소리를 즐기는 사람 등 대중은 각자 취향이 다릅니다. 이 다양성을 인정하면 1등, 2등으로 등수를 매기는 건 비합리적이라 보는 거지요. 게다가 아마추어 가수도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 뮤지션을 상대로 등수를 매기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연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공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경연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최근 큰 인기가 있던데, 이것도 은근한 걱정입니다. 상금액수가 고액이다 보니 음악에 대한 진솔한 맛을 느끼지 못해요. 

또 오디션에서 떨어진 젊은이들이 쉽게 음악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꾸준한 노력 끝에 음악적 성취를 할 수도 있는데 이런 노력할 기회마저 차단시키는 거죠. 좋은 음악 프로그램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랍니다.”

―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7080보다는 8090에 가까운 가수예요. 그런데도 나이가 50세가 넘었어요. 10대 20대 젊은 가수가 속속 출현하고, 아이돌가수가 K-팝으로 세계를 재패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이든 가수에 대해 하는 말이 있어요. 과거 음악만 재탕하는 나이든 가수들은 이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건 한마디로 ‘정신적 고려장’이라고 봅니다.

사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가수들이 음악을 하는 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가수는 많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100세를 살아야 하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음악을 하려면 과거 음악 재탕이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공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처럼 나이가 들어가는 가수들이 신곡을 내도 알릴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방송에 나와서 신곡 소개도 하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배철수의 <콘서트 7080> 같은 프로그램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인간인데,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련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니까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면서,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가수로 살고 싶고, 또 그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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