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국 씨가 1990년 8월 설립한 시공사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베스트셀러를 내며 단기간에 대형 출판사로 성장하는 등 지난 20여 년간 급속하게 사세를 확장해 왔다.
국내 출판계에는 시공사의 급성장 비결을 재국 씨의 탁월한 사업 수완으로 돌리는 이들도 있지만 사업 경험이 전혀 없던 그가 유학생활 직후 출판사를 세우고 단기간에 출판계의 '기린아'로 부상한 데에는 부친의 든든한 비자금이 한몫하지 않았겠느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20년간 고속성장…IMF에도 거침없는 사업확장 = 재국 씨는 1989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이듬해 8월17일 시공사를 설립했다.
시공사는 1992년과 93년 존 그리샴의 장편 '펠리컨 브리프'와 '의뢰인'을 번역, 출간해 잇따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렸다.
1993년 5월에 출간한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국내 최단기 100만부 판매를 돌파해 화제를 모은 일을 비롯해 외국 유명 작가들의 저작권을 사들여 재미를 보기도 했다.
1996년엔 문화유산, 고대문명, 과학, 예술 등을 아우르는 교양서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리즈를 출간했다.
'로고스 총서'와 '아트 총서', '시공주니어' 등 현대석학의 업적과 미술, 철학, 만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책을 쏟아내며 출판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외환위기로 탄탄한 중견 기업들도 휙휙 쓰러져 나가던 시절, 시공사의 광폭 행보는 계속됐다.
시공사는 1998년 10월 출판물 유통업체 북플러스를 설립했고 같은 해 135종의 책을 펴내며 한해 최다 종수의 책을 출간한 업체 기록을 세웠다.
2000년에는 도서유통법인 리브로와 경영난으로 휘청거리던 을지서적, 화정문고 등 대형 서점을 잇달아 인수했고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까사 리빙'을 창간했다.
이 외에도 웹툰 제작 및 유통업체 파프리카미디어, 유아·어린이 교육전문 기업 뫼비우스, 케어플러스, 아티누스, 지식채널 등 다수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2000년 기록부터 검색되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자료를 보면 시공사는 매출액이 1999년 146억8천만원에서 2000년 237억8천만원으로 급증했다.
이후 매출액은 꾸준히 증가해 출판계 전반의 불황에도 시공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442억7천700만원, 영업이익은 30억 원에 달했다.
금융감독원 관련 자료에 따르면 시공사는 재국 씨를 비롯한 전씨 일가의 가족 회사나 다름없다.
지난해 재국 씨가 보유한 시공사 지분율은 50.53%였고 재국 씨의 부인과 동생 재용, 효선, 재만 씨는 각각 5.32%를 보유했으며 이들의 지분율은 2009년부터 계속 같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시공사 용도로 수백억대 부동산 매입…자금 출처 의혹 = 재국 씨가 시공사 본사 사옥과 파주 사옥 용도로 사들인 부동산만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외환위기 시절 재국 씨가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흘러들어 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다.
부동산을 사들이는 과정에 부친의 비자금이 흘러들어 간 것으로 입증되면 미납 추징금 상당 부분을 환수할 수 있게 되는 만큼 재국 씨가 사들인 부동산의 규모에도 관심이 쏠린다.
시공사는 서초동 1628-1번지(349.1㎡)와 1628-2번지(330.9㎡)에 본사를 두고 있는데 재국 씨는 1998년과 2000년에 시공사 본관 인근 땅 329.2㎡와 2층 건물, 382.9㎡의 땅과 3층 건물을 더 사들였다.
지난 5월31일자 개별공시지가에 따르면 시공사 본사가 있는 서울 서초동 1628-1번지와 1628-2번지를 합친 땅값은 56억5천여만원에 이른다. 보통 실거래가는 공시지가를 훨씬 웃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건물까지 합쳐 부동산 가격은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시공사 파주 사옥이 들어선 문발동 521-1번지의 1천515㎡ 규모 토지도 1998년에 사들여 2007년 4월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 5월31일에 공시된 이 토지의 공시지가는 1㎡당 64만원이다.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143번지 헤이리마을 북카페 겸 갤러리 아티누스는 대지 면적 1천881.1㎡에 2005년 3월 지하 2층, 지상 3층으로 연면적 2천635.42㎡ 규모의 건물로 이뤄졌다. 이 땅은 공시지가가 1㎡당 86만2천원이다.
◇출판계가 보는 성공비결…"든든한 뒷돈" vs "탁월한 사업수완" = 출판계에서 재국 씨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출판계 한 관계자는 "시공사 정도 규모의 출판사 대표라면 출판계 인사들과 교류가 활발하기 마련인데 재국 씨는 업계 인사들과의 교류가 거의 없어 알려진 것도 별로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출판계에서 상당한 입지를 굳힌 출판사 대표이면서도 출판 관련 단체에서 이렇다 할 직책을 맡았던 적도 없고 대외 활동을 상당히 자제하는 편인 것 같다"고 했다.
시공사의 고속성장 배경에 대해 출판계 인사들은 넉넉한 자금 덕분에 과감한 공격 경영을 할 수 있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출판계 한 전문가는 "출판사 중에는 출판계에서 시작해 성공을 거둔 뒤 다른 분야로 진출한 예는 있었지만 시공사처럼 사업 초기부터 여러 분야에 걸쳐 사업을 확장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재국 씨의 경영 수완은 인정하지만 돈 안 되는 잡지나 예술 서적 분야로까지 과감하게 진출하면서도 빠르게 성장한 점에서 특이한 케이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국 씨와 몇 번 만나면서 느낀 건 다양한 영역에 관심이 많고 출판사업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다는 점"이라며 "아버지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겠지만 사업 수완도 탁월한 것 같다"고 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시공사 측은 "시공사가 고속성장을 했다지만 우리도 어렵고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쌓인 부채가 상당한 수준이다. 소문처럼 비자금이 흘러왔다면 어마어마한 은행 이자를 부담하면서 어렵게 사업을 해왔겠나"라며 "시공사는 전재국 대표 혼자 이룬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땀 흘려 일궈낸 회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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