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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현주, 개미가 ‘대세’로 거듭나기까지

입력 : 2013-08-27 15:25:30 수정 : 2013-08-27 16: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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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본인조차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을 거다. 배우 손현주(48)가 주연을 받은 영화 ‘숨바꼭질’(감독 허정)이 지난 주말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2주 연속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400억 글로벌 대작 ‘설국열차’(감독 봉준호), ‘하대세’ 하정우 주연작 ‘더 테러 라이브’(감독 김병우) 등 8월 극장가를 ‘양분’하다시피 했던 작품들을 개봉과 동시에 잠재웠다.

사실 충무로 관계자들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의 흥행을 미리 점친다는 것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일이 됐다. 작품성과 오락성 말고도 극장 대진운과 날씨, 계절, 입소문 등 많은 요건들과 더불어 천운까지 따라줘야만 흥행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있다.

숨바꼭질의 경우, 순제작비 25억원에 불과한 저예산 영화로 꼽힌다. 그런 영화가 400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신인 감독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감각, 탄탄한 시나리오, 공포 스릴러 장르 등이 절묘하게 여름 시즌과 맞아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손현주를 필두로 한 문정희, 전미선 등 베테랑급 연기자들의 호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손현주는 첫 주연을 맡아 극의 무게중심을 담당한 한편,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와 감독의 조언자까지 자처하며 흥행에 커다란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손현주의 활약은 스크린에서 뿐만 아니라 브라운관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방영 중인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감독 박경수, 연출 조남국)에서 그는 그룹 후계자가 되기 위한 야심의 발톱을 숨긴 채 살아가는 성진그룹 부회장 아들 최민재 역을 맡아 배우 고수·이요원 등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듯, 손현주는 연기인지 실제인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는 ‘신들린 연기력’으로 서서히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정식 데뷔 후 무려 22년간 쌓아온 신뢰감이 이제야 빛을 발하는 듯 보인다. “천천히 가라. 빨리 갈 필요 뭐 있겠나”라고 말하는 그의 연기철학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모든 ‘인생 후배’들이 되새겨봄직한 미덕이 되고 있다.

◆ 국민 찌질남에서 바람둥이 남편으로

1965년생인 손현주는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공식적인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연극을 비롯한 각종 영화·드라마에서 단역 및 조연을 맡으며 연기력을 차곡차곡 쌓아나갔다.

옆집 아저씨 같은 평범한 인상은 어쩌면 그의 연기 인생에 있어 최대 장애물이자 약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손현주는 인터뷰에서 “내가 꽃미남이길 해, 훈남이길 해. 그냥 부지런히 (연기)하는 수밖에는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런 그가 시청자들로부터 첫 눈도장을 찍은 계기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방영된 KBS 1TV 일일연속극 ‘바람은 불어도’(극본 문영남, 연출 이영희)였다. 당시 평균 시청률 55.8%로 국민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킨 드라마에서 손현주는 “황씨아저씨”라는 유행어를 낳은 김반장 역할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이 드라마를 집필한 문영남 작가와의 인연으로, 이후 ‘애정의 조건’(2004), ‘장밋빛 인생’(2005), ‘조강지처 클럽’(2007), ‘폼나게 살거야’(2011) 등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전속 배우’의 행운을 거머쥐었다.

그 중 손현주의 존재감을 세상에 다시 알린 계기가 된 작품은 고(故) 최진실과 공연한 ‘장밋빛 인생’(극본 문영남, 연출 김종창)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아내 최진실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바람둥이 철부지 남편 반성문 역을 맡아 열연했다. 

장밋빛 인생은 당시 이혼의 아픔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최진실의 복귀작으로 많은 화제몰이를 했지만, 손현주에게 있어서도 ‘주연급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이기도 했다. 손현주는 ‘얄밉지만 정이 가는’ 국민 남편 연기로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과 함께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 드라마 ‘추적자’를 만나다

그리고 그의 평생 필모그래피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 ‘추적자: THE CHASER’(극본 박경수, 연출 조남국)를 만났다.

장밋빛 인생 이후 ‘여우야 뭐하니’(2006) ‘히트’(2007) ‘타짜’(2008) 등에서 조연급으로 활약하거나, ‘조강지처클럽’(2009) ‘솔약국집 아들들’(2009) ‘이웃집 웬수’(2010) 등 주말 가족드라마와 영화 ‘연리지’(2007) ‘펀치레이디’(2007) ‘더 게임’(2007) 등에서 주조연을 맡는 등 수많은 작품들을 거쳐나갔다. 

지난해 방영된 추적자는 “스타급 연기자가 없는 드라마”라는 점을 오히려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웠을 정도로 대중의 별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시작됐다. 하지만 ‘도망자’ 백홍석 역으로 분한 손현주의 연기, 긴박감 넘치게 촘촘히 짜인 극본 등이 연일 시청자들의 입소문을 타며 ‘대박 드라마’로 거듭났다.

이때부터 손현주에 대한 시청자·관객들의 신뢰도는 급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론 20여년간 쌓아올린 주춧돌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이다. 그해 SBS 연기대상을 거머쥔 그는 “각자의 위치에서 제 일을 다 하고 있는 수많은 개미들과 이 상의 의미를 같이 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로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그가 바로 ‘개미’였다.

추적자는 그의 출세작이 됐지만, 그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다. 백홍석으로부터 벗어나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작품 러브콜이 많을 때 다른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백홍석을 가슴 한 쪽에 미뤄둘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영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 “느리게 가라” 연기철학, 드디어 꽃피우다

“드라마는 진짜 초싸움이에요. 미니시리즈는 정말 긴박하게 돌아가죠. 단 한 사람만 늦어도 전체 촬영 일정에 차질을 빚거든요. 제가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첫 번째도 시간, 두 번째도 시간이에요.”

손현주는 가진 것 없고 별 볼 일 없었던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봤을 때 잘한 일을 꼽으라면 ‘약속’과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연기는 누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원해서 걸어온 길이니 그 선택에 책임을 지라는 거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무려 22년간이나 묵묵히 참고 맡은 바 최선을 다하다 보니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게 됐다. 손현주는 “언제나 나태해질까봐 스스로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숨바꼭질’, 드라마 ‘황금의 제국’까지. ‘추적자’ 이후 그의 행보는 성공적이라 단언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제는 또 “서글서글하고 찌질한 옆집 아저씨 같은 역할을 맡은 지 오래”라며 “다시 밝은 역할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손현주는 앞으로도 쉬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숨바꼭질은 배우로서 잘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작품 선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사진=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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