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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꿈 포기하게 한 기자들…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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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7 19:18:18 수정 : 2014-04-28 03: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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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에 경멸… 희생자 가족에 실망과 분노만”
과열된 취재… 언론 본분 잊어, ‘재난 보도’ 기본으로 돌아가야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을 언어로는 모두 전달할 수 없었다. 지난 23일 경기도 안산의 한 장례식장.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열일곱살 딸의 영정을 바라보던 A씨가 울기 시작했다. 텅 빈 눈동자에서 눈물방울이 투두둑 떨어졌다. 너무 울어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지 가녀린 흐느낌만 빈소에 흘러다녔다. 이를 지켜보다 눈물을 훔치고야 말았다. 계획했던 인터뷰는 말조차 붙여보지 못한 채 끝났다.

단원고의 임시 휴교가 끝나고 학생들이 사고 후 처음으로 등교한 24일. 한 학년이 거의 통째로 사라진 학교는 언론의 초점이 됐다. 친구의 빈자리가 가져다줄 두려움이 생경했을 어린 학생들에게는 등교가 공포였을 테다. 하지만 그들의 공포감 마저 언론에는 ‘기사감’이었다. 교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1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학교에 들어선 학생들을 향해 플래시가 터졌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지금 심경이 어때요?” 학생들의 고통은 안중에 없었다. 되돌아 온 것은 침묵이었다. 아차! 싶었다.

이날 취재진에게 단원고 3학년생이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분들께’로 시작했다. 편지에서 학생은 기자가 되려던 꿈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신념을 뒤로한 채, 가만히 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분,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저 업적을 쌓아 올리기 위해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고 정말 부끄럽고, 경멸스럽고, 안타까웠다”고 했다.

기자들 사이에서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여기저기서 “그냥 돌아가자”는 말이 나왔다. 슬그머니 카메라의 불도 꺼졌다. 그날 한국사진기자협회는 학교 앞과 재학생을 취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위로하고자 경기 안산시 단원고에 전달한 목련 묘목이 26일 오후 단원고 정문 쪽에 심어져 있다. 단원고 교직원 일동은 27일 ‘감사인사’ 편지를 통해 “따뜻하고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에 대하여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엊그제 지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기자가 아닌 친구로서 그의 장례식에 조문했다. 비통한 유족들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영정 속에서 환히 웃는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다가 수일 전 안산에서 취재활동에 여념이 없던 나의 모습을 반추했다.

신문윤리강령에는 “재난 취재시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피해자의 치료를 방해해서는 안되며, 재난 및 사고의 피해자와 희생자, 그 가족에게 적절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 때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몇 번이고 읽었던 내용이다.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안산 고교생들이 겪었을 두려움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왔다.

안산=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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