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우울한 마음과 영혼 치유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미술을 향유하며 즐기는가 하면, 미술관이나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가는 마음조차 어려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저는 그림에는 ‘문외한’ 이라서”라는 말은 초면에 만난 사람에게서 많이 듣는 말이다. 정말 몰라서 일 수도 있고, 조금은 알지만 미술 세계가 이해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에 문학, 음악, 미술을 접하고 예술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으로 “지금 당신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며 노골적으로 질문을 쏟아내고 현대미술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즉 미술은 ‘기술을 동반한 자기 이야기를 펼치는 장르’로서 현대사회에서 정신적·일상적·문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다양한 형식으로 사회를 받쳐주고 있다. 그리고 미술은 개개인이 지닌 개성과 다양한 기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꿔 말하면 화가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예술세계의 개념을 말하며, 시각적 영상을 선보인다. 뿐만 아니라 미술은 화폭에만 그치지 않고 다양한 복합매체와 융합해 그 영역이 과도한 팽창을 꾀하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어떤 것이 예술이고, 어떤 것이 예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면 무엇이 미술을 난해하게 만든 것일까. 직접 인간의 몸을 그리는 ‘인체 드로잉’을 해보면 그 답이 보인다. 처음에는 5분간 드로잉을 해도 형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 차례 반복하면 그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손에 익숙해진다. 그러면 생략도 하고, 상상만으로도 그릴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 이와 같이 새로운 형상이나 소재를 접할 때는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풍경을 그릴 경우에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그릴 수는 없다. 눈여겨보았던 내용을 중심으로 준비한 기술적인 면과 기억의 습득된 연습으로 만들어진 풍경에 대한 소재를 선택적으로 그려 나간다. 결국 그림은 개념, 추상, 구상, 철학적 자아 등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느끼게 하는 그림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을까. 구도를 잡고 마음을 정리하면서 어느 선, 어느 색을 선택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풍경을 바라보고 점과 선으로 이뤄진 마음속 풍경을 그린다. 자신의 시각을 점과 선으로 객관화한다. 주관적, 보편적, 객관적, 구상, 추상으로 표현된 나의 그림이 지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수많은 아이디어와 대상을 비롯해 단순하고 순간적인 감흥이 모여 화면을 이룬다.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
이제 무엇을 그릴 것인가. 미술을 표현하고 논의할 때 객관적, 주관적, 구상, 추상 등을 논한다. 개념과 재현 등으로 나뉘지만 기본적 바탕은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대상에 대한 자아의 발견이 구현되는 것이다. 숙련된 과정의 완성도를 거친 후에 새로운 창의적 사의성(寫意性: 사물의 외형보다 내재한 정신을 중시하는 것)을 가진 자신만의 회화적 모태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 가치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관람자 몫이다.
5월, 가정의 달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추도 분위기 속에 공연, 전시 등 문화 소비가 주춤하고 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온 나라가 집단 무기력을 넘어 멈춰 선 듯한 느낌마저 든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보통은 미술 에세이 ‘영혼의 미술관’에서 인간의 고단한 삶을 위로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잠긴 요즘, 다양한 장르의 미술 세계에 빠져 우울한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작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하순 서울대 교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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