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7일 윤 일병 사망 이후 권 총장은 10일까지 네 차례 보고를 받았다. 28사단 헌병대장과 28사단장, 육군 헌병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소장)과 헌병실장(준장)이 서류 또는 구두로 권 총장에게 수사 진행 상황을 보고했으나 그 누구도 윤 일병이 지속적인 구타를 당하고 엽기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얘기하지 않았다. 28사단 검찰단은 가해 병사들이 윤 일병에게 치약을 먹이고 가래침을 핥게 하거나 수액주사를 놓은 뒤 구타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권 총장에게 알리지 않았다.
권 총장은 이번 사건을 단순 폭행치사 사건 정도로 인지했고, 7월31일 군 인권단체가 숨진 윤 일병의 수사기록을 폭로할 때까지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헌병과 군 검찰이 보고 과정에서 세부 내용을 일부러 누락시킨 것인지, 육군 지휘라인이 수사 보고서를 방치한 것인지, 권 총장 등 군 수뇌부가 보고를 받고도 이를 은폐한 것인지 등은 향후 추가 수사 를 통해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사건 발생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도 지난 4월8일 “육군 일병이 구타에 의한 기도폐쇄로 사망했다. ‘쩝쩝’ 소리내며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사고자들로부터 손발로 손과 가슴을 수십 차례 폭행당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뿐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당시 김 장관은 “14년 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구타 사망 사건”이라며 엄정 수사를 지시했지만 이후 단 한 차례도 관련 보고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장관이 4월 중순 윤 일병 사망사건 후속조치로 특별 군 기강 확립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5월1일에는 권 총장 주관으로 주요 지휘관 화상회의가 열렸다는 점에서 당시 군 수뇌부가 부실 보고 탓에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권 총장은 지난 6월9일 ‘일반명령 제14-156호’를 하달해 구타·가혹행위 및 언어폭력 발본색원을 전 부대에 지시하기도 했다. 구타 및 가혹 행위 금지 관련 일반명령이 하달된 것은 35년 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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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서 폭행으로 사망한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의 사진을 공개하며 회의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를 질책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
2006년 4월 공군 선임병 2명이 신병에게 물고문·전기고문을 본뜬 가혹행위를 하다가 적발됐다. 공군 사병들의 가혹행위는 악질적이었다. 이들은 갓 전입한 신병에게 방송 개그 흉내를 강요했다가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전기가 흐르는 전선을 허벅지에 대는가 하면 1.5ℓ나 되는 물을 억지로 마시게 했다. 지난달 10일에는 군 복무 당시 가혹행위 등으로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전역한 이모 상병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범죄인 가혹행위 외에도 군 내에는 특정 병사를 표적으로 삼아 괴롭히는 집단따돌림 행태가 만연해 있다. 지난 6월 동부전선 GOP(일반전초)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이나 2011년 김포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은 병영 내 집단따돌림이 참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종을 울렸다. 이런 뒤틀린 병영문화는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같은 독버섯이 자라는 토양이 됐다. 잊을만하면 불거져나오는 병영 내 가혹행위 사건은 국방부가 그동안 전개해온 병영문화 개선 캠페인이 전시용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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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간부들이 배석한 가운데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있다. 한 장관은 “군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죄의 뜻을 밝혔다. 연합뉴스 |
이와 함께 “관련 부처와 협조해 가해자와 같은 사고 우려자의 입영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현역복무 부적격 처리 절차를 간소화해 처리기간을 단축하는 등 보호관심병사 관리 시스템 개선을 조기에 시행해 병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박수찬 세계닷컴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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