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9세기 특권계층 위한 공간, 20세기 ‘보여주는 박물관’ 변화
도미니크 풀로 지음/김한결 옮김/돌베개/1만5000원 |
2012년 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관할 당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박물관은 유례없이 짧은 시간에 엄청난 성장을 보인 한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증언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한쪽에서는 경제성장사에 치우쳐 민주화 역사를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박물관의 성격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한동안 계속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흔히 보는 풍경 중 하나는 전시실을 분주하게 오가는 초등학생들이다. 관람객 중 누군가는 ‘초딩’들이 만들어내는 박물관의 시끌벅적함이 마뜩잖을 수도 있다. ‘문화재 감상’이라는 게 뭔지를 알 리 만무해 보이는 꼬마들도 꽤 많다. 이들에게 박물관은 ‘그저 놀이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박물관은 기본적으로 문화재를 보관·전시하고, 연구하는 곳이다. 동시에 ‘집단기억’을 구체적인 문화재를 통해 증언하는 국민 정체성 형성의 통로이며, 역사 해석을 둘러싼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현장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쉼터일 수 있다. 이처럼 박물관은 다양한 면모를 가진다. 책은 기존의 역할을 뛰어넘어 새롭고 다양해진 모습으로 일상 속으로 파고든 박물관의 기원과 발전 방향을 탐색한다.
애초 박물관의 소장품은 왕가 혹은 부유층의 컬렉션이었다. 비슷한 계급의 사람들이 폐쇄적으로 감상하던 대상이었다. 유럽에서 근대적 박물관이 생기며 대중이 유물 감상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대중 참여의 폭을 급격하게 넓혔다. 이때부터 박물관 향유는 대중의 권리가 되는데, 정체성을 형성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물관은 “경비에 의해 삼엄하게 감시되고 있어 몹시 찾기 어려워” 여전히 불편한 곳이었다. “박물관의 진정한 이용객은 지식인과 예술가들, 즉 소수의 특권계층”에 한정된 상황이었다. 19세기의 고전적 박물관은 “한 국가나 공동체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변모했다. 박물관의 소장품은 해당 공동체의 한 부분을 특징짓거나 대표하는 것들이었다. 관람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때 시작됐다.
1850∼1852년 대규모 보수공사를 거친 루브르박물관의 아폴로 회랑을 그린 유화다. 20세기 들어 관람객의 편의를 고려한 박물관 구조가 강조되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고려는 그다지 없었다. 돌베개 제공 |
프랑스 파리1대학 교수인 저자는 수세기에 걸친 박물관의 변화 양상을 추적하며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변화의 흐름이 어디로,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쏟았다. 박물관을 하나의 문화공간으로만 보지 않고 거시적인 시선으로, 문화적 현상으로 조망한 것이다.
한국어판을 내며 집필의 배경을 따로 밝힌 것에서 한국 독자에 대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을 소개하고 있고, 원서에는 없는 다양한 이미지 자료를 배치해 이해도를 높이려 한 점이 눈에 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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