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중국 헤이룽(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에 안 의사 기념관이 개관하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안 의사를 범죄자,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이 안 의사의 의거에 대해 암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안 의사는 1909년 의거 당시 “대한육군 중장 자격으로 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이등(이토)을 사살한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힌 바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남상구 연구위원은 “적어도 한국에서 이토 암살이라고 표현한 서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신운용 책임연구원은 “일본이 사용하고 있는 암살은 몰래 죽였다는 것으로 굉장히 부정적 용어”라며 “우리 입장에서 안 의사의 의거는 처단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사관이 사용 중인 을사보호조약과 한·일합방이라는표현이 부당하다는 지적은 제1차 일본 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대일 민족의식이 고조된 1980년대부터 제기됐다. 일제의 의한 강제적인 외교권 박탈과 국권침탈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이 1919년 일제가 소위 문화정치를 시작했다고 표현하며 보충설명 없이 ▲총독 임명 제한(군출신 임명 폐지) ▲보통경찰제도(헌병경찰 폐지) ▲제한된 정치참여 허용이라고 기술한 것도 옳지 않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겉으로 무단(武斷)통치에서 문화정치로 바꿨다고 하나 식민지 강압통치라는 내용의 변화는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총독 6명 중 문관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조선 주둔 일본군·경의 병력은 오히려 증가했다. 우리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라는 입장인 만큼 한·일의정서(1904년), 제1차 한일협약(1904년) 등을 굳이 홈페이지에 기록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청중·김예진·염유섭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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