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하녀’(1960)의 여주인공 이은심(80·사진)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이성구 감독과 함께 1982년 브라질로 이민 간 지 33년 만에 택한 한국행이다.
이은심이 4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약간 구부정한 걸음걸이에 다소 긴장한 표정이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이내 곧 환하게 소녀처럼 웃어보인다.
‘하녀’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한 ‘아시아 영화 100’에서 공동 10위에 올랐다. 그는 당시로서는 파격인 담배 피우는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담배를 피워 본 적도 없는데…, 스태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인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찍었습니다.”
당대 인기작의 여주인공을 꿰찼던 그는 왜 훌쩍 영화계를 떠났을까.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다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이민 간 뒤로는 애 키우는 평범한 주부로만 살았어요. 33년 동안. 영화에 대한 그리움이나 미련은 전혀 없었습니다. 연기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다시는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떠났던 거니까요. 브라질로 간 것은 남편의 누이가 그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고…. 사실 나는 이뻐서 배우가 된 게 아닙니다. 키도 작았고…. 시나리오 속의 하녀와 인상이 맞아서 픽업된 거였죠. 호기심에 영화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충무로 다방에 갔다가 김기영 감독님의 눈에 띈 거예요. ‘하녀’ 다음으로 예술영화를 한 편 찍다가 중도에 하차했어요. 상대와 주고받는 감정 연기가 안 된다는 지적을 받았거든요. 그때는 정말 힘들고 창피했죠.”
이성구 감독이 만든 ‘장군의 수염’(1968)은 올해 영화제의 ‘한국영화 회고전’에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다.
“한창 ‘하녀’를 촬영할 때 충무로에서 우연히 그이를 만났어요. 선한 인상에 끌려서 연애를 시작해 결혼했죠. 그이는 어릴 적 꿈이 지휘자일 정도로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던 남자였어요. 말년까지도 외국어를 네댓 개 공부하길래, 다 늙어 뭐할 거냐고 핀잔을 주곤 했는데…. 요즘엔 내가 그이처럼 공부하고 있어요. 열심히 하면 치매에 안 걸린다고 해서. 사전 찾아보며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단어를 외웁니다.”
딸(이양희·50), 손녀(김희연·21)와 함께 부산을 찾은 그는 새로운 추억거리를 안고 5일 브라질로 돌아간다.
부산=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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