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의 전통을 계승해 왕의 초상인 어진을 제작하고, 어진만을 특별히 보관하는 진전을 설치했다. 태조의 어진만을 받드는 진전은 여러 곳에 마련됐고, 후대 왕의 어진은 궁궐 내에 선원전을 설치해 보관했다. 조선은 27명의 왕을 배출했지만 당대의 실물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어진은 태조, 영조, 철종, 고종, 순종 5명뿐이다. 시대별로 역대왕의 어진을 제작해 창덕궁의 선원전 등에 보관했지만,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부산으로 옮겨 보관한 어진 대부분이 화재로 소실됐기 때문이다. 현재의 철종 어진은 좌측면 절반가량이 불에 타 훼손된 모습이며,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문조로 추존) 어진에도 화재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은 후대 기록을 바탕으로 그린 상상의 초상이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
현존하는 어진에는 왕의 특징이 나타난다. 1396년 청룡포를 입은 태조를 그린 어진(1872년에 다시 모사함)에서는 무인다운 강인함이 엿보이며, 어진 속 영조의 모습은 치밀하고 깐깐했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영조는 왕이 되기 전 왕세제 시절의 어진까지 남아 있는데, 젊은 시절 체형이 노년기에도 유지됨을 볼 수 있다. 영조는 83세로 조선 왕 중 최장수 기록을 세웠다. 채식위주 식단과 철저한 건강관리가 장수의 요인이었는데, 어진에서도 이러한 면모가 확인되는 것이다. 강화도령으로 있다가 세도정치 시기 정치적 입김 속에 왕이 된 철종의 얼굴과 눈매에는 독자적으로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불안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어진을 통해 역사책에 등장하는 상상 속 왕의 모습이나 드라마 속 연기자가 연기한 왕이 아닌, 왕의 실제 모습을 접해 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왕들이 만들어갔던 역사와 그 숨결도 느껴보았으면 한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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