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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변해도 여자의 사랑은 그 자리에…

입력 : 2016-03-02 20:27:26 수정 : 2016-03-02 20: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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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장커 감독의 ‘산하고인’ 영화 ‘산하고인’(山河故人)은 지아장커 감독의 ‘진화’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중국 6세대 감독의 간판 스타인 지아장커는 그동안 ‘소무’ ‘세계’ ‘스틸 라이프’ ‘24시티’ 등의 작품을 통해 1980년대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된 도시문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인간군상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아 왔다. 리얼리즘과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중국의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해온 그는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인 베니스, 베를린, 칸 영화제를 차례로 석권하며 ‘세계 영화계의 젊은 거장’으로 우뚝 섰다.

그런 그가 2013년 돌연 갱스터와 누아르를 버무린 ‘천주정’으로 장르영화에 진입하더니, 마침내 신작 ‘산하고인’에서는 첫 멜로드라마를 펼쳐 보인다.

사람의 관계를 차분하게 응시하는 ‘산하고인’은 인생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해 ‘사랑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가치’라고 일깨운다.
하지만 관객을 울리기 위한 멜로가 아니라 급격한 경제성장에 따른 중국인들의 변화된 감정이나 자본주의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카메라는 한 여인의 인생을 멜로드라마인 척 따라가고 있지만, 그 이면에선 지아장커의 영화답게 급속한 발전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국인들의 심리변화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1999년 과거부터 2014년 현재를 거쳐 2025년 미래에 이르기까지 세 남녀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다. 여주인공 타오(자오 타오)를 두고 친구 사이인 진솅(장역)과 리앙즈(양경동)가 동시에 사랑에 빠지면서 삼각관계에 의한 갈등이 시작된다. 고민하던 타오는 결국 가난한 리앙즈 대신 부유한 진솅과 결혼하고 아들 달러(동자건)을 낳는다. 이러한 선택은 주인공 타오의 인생을 지배하는 카르마로 작용한다.

지아장커의 멜로는 그 흔한 사랑 얘기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여자의 의리’를 타오의 인생에 녹여낸다. ‘남자의 의리’가 불꽃놀이라면 ‘여자의 의리’는 고향 ‘펀양’을 휘감아 흐르는 ‘황허’의 물살이다. 타오는 고향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자신의 선택으로 상처받은 남자들을 기다린다.

극중, 타오의 힘든 결정은 두 가지다. 남편을 고르는 것과 나중 이혼하게 되는 남편에게 아들의 양육권을 넘기는 일이다. 첫 번째 결정은 감정에 따른다. 진솅의 자동차는 언제든 타오를 현대문명의 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었다. 타오에겐 두 번째 결정이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엄마로서 아들을 곁에 두고 싶었지만 아들의 미래를 위해 해외유학을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진솅에게 보내기로 한다. 실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은 2025년의 타오와 달러에게 극심한 외로움과 사랑 결핍을 가져다준다.

감독은 50대의 타오가 자신의 결정을 재고하리라 믿는다. 따라서 영화 속에선 모자의 재회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관객들에겐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상상의 여백을 충분히 남겨 놓는다.

‘사랑과 관계’를 중국에서는 정의(情義)라 쓴다. ‘정’은 감각적인 애정을, ‘의’는 충실한 의무의 관계, 헌신과 책임을 뜻한다. 시간이 지나 애정은 식어도 ‘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온 리앙즈를 돕는 타오의 모습이 ‘의’다. 지아장커는 ‘정의’가 더욱 풍부한 의미를 지녔던 지난날을 그리며 ‘산이 무너지고 강이 말라도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산하고인)의 메시지를 전한다.

‘산하고인’은 3개의 화면비율을 사용했다. 과거 장면은 1.33대 1, 현재는 1.85대 1, 미래는 2.39대 1의 각각 다른 비율로 촬영했다. 과거에 미리 찍어 두었던 무작위 영상들을 ‘산하고인’에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의 시대상과 감정, 가치, 문화적 취향 등을 완벽하게 다시 찍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거 부분 가운데 ‘펀양 봄 축제’ ‘디스코텍에서 춤추는 사람들’ ‘뒤집힐 것 같은 트럭’과 현재 부분의 ‘야외에서 불피우는 사람들’ ‘광산의 석양’ 장면 등이 그 예다.

타오와 친구들이 추는 군무로 시작해 타오 홀로 추는 독무로 끝내는 구성과 영화의 타이틀 ‘산하고인’을 이미 영화가 상영된 지 3분의 1이나 지난, 과거 부분이 끝나는 지점에서 스크린 가득 띄우는 것도 영상문법의 새로운 실험이다. 그럼에도 낯설지 않는 것은 지아장커의 내공 있는 연출력 덕이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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