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25일 대학교수단 시국선언이 대표적인 예다. 4·19 의거 당시 무고한 학생들이 희생되자 각 대학 교수 258명이 계엄령으로 집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서울대 교수회관에 은밀히 모였다. 이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이번 4·19 참사는 우리 학생운동사상 최대의 비극이요, 이 나라 정치적 위기를 초래한 중대 사태이다.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규정이 없이는 이 민족의 불행한 운명은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다”고 했다. 3·15 선거를 부정선거라고 못박고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에 시국선언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결집하는 데 기여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에 반발한 대학교수·사회단체 등의 시국선언은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 민주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문학평론가 황호덕은 “삶의 정향화·재구축을 요구하며 시국선언의 글자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던 1987년의 어떤 걸음걸음들은 의인(義人) 정치이면서, 하나의 기술(記述), 특수하게 미적인 기술이다”고 했다.
지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시국선언이 전국 각계각층에서 들불처럼 번진다. 어제 종교·사회·정치 원로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중단과 초당적 거국내각 구성을 촉구했고,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와 교수노조 소속 교수 및 연구자들은 박 대통령이 국기문란과 헌정파괴의 책임을 지고 하야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달 26일 이화여대와 서강대에서 시작된 대학생 시국선언이 100여건에 달한다. 미국 대학 유학생, 고교생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보수단체들도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내는 판이다. 성난 민심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이 나와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박완규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