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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손끝에서 살아온 가슴 시린 첫 사랑의 기억

입력 : 2018-07-05 21:07:08 수정 : 2018-07-11 14: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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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인 신작시 담아 ‘너의 눈동자엔…’ 펴내 “낮술 한 홉 들이켠 그녀/ 준비 없이 쏟는/ 눈물// 후두두둑// 서둘러 열기를 접는 양철 지붕/ 텃밭에 피어나는 실파의 맑은 얼굴과/ 뒤꼍 조릿대 소복한 아우성/ 가슴을 다르륵 박고 떠나는/ 재봉틀 소리”

후두두둑, 텃밭에 뒤꼍에 여우비가 지나간다. 빗물에 씻긴 실파는 맑아졌고 조릿대 이파리는 저마다 몸을 흔들며 수선스럽지만 첫사랑에 가슴이 턱 막힌 그녀는 눈물바람이다. 후두두둑, 재봉틀로 가슴을 박는 소리다. 뜬금없이 쏟아지는 여우비는 낮술 한 잔 들이켠 그녀가 느닷없이 쏟는 눈물이다. 권선희 시인은 “무엇이 ‘첫’이고 무엇이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나이, 두서없는 생을 되감다 턱 하니 걸리는 것, 잠시 쏟아지다 이내 멈추고 마는 그 사람”이라고 ‘여우비’에 메모했다. 

첫사랑 테마시집 ‘너의 눈동자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나무옆의자·사진)에는 권 시인을 비롯한 49인의 신작시가 수록됐다. 이들은 첫사랑이라는 화두를 다양하게 소화한다. 이승희는 “우리는 한 번의 생에 딱 한 번만 고여서 둥글어지고 싶었다 빗방울처럼 목매달고 싶었다 빗방울처럼 떨어지고 싶었다 빗방울처럼 고요해지고 싶었다”고 ‘빗방울처럼’ 토로한다. 첫사랑을 욕되게 할 수는 없다. 배수연은 ‘곰에서 왕으로1’에서 첫사랑의 관능을 양말을 벗기며 묘사한다. 사랑이 끝나 한 짝씩 버려졌더라도 아무도 양말을 욕되게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오른쪽에 사막이/ 왼쪽에 수박이 수놓인 양말을 벗기며/ 네가 웃습니다/ 한 번 더 할까/ 가능하면 자주/ 양말을 욕조에 가지런히 걸어둡니다”

서윤후는 ‘곡우穀雨에 온다는 말’에 목을 맨다. “허수아비 수거해간 자리에 알 낳는 메추리를 보는 일, 서로 불현듯 쏟아질 소나기 한 줌 두 손으로 받들고 조심하며 사는 일, 그러다 한순간에 모두 젖으면 웃음이 나는 빗속의 우리는 어디쯤 오고 있나요.” 장석남은 “나물 반찬이 파란/ 마당은 눈부신 점심/ 새가 우네// 서늘한 대들보 아래서/ 내다 보네”라고 선시풍으로 ‘첫사람’을 읊으면서 “모든 지나간 사랑이 첫사랑이고 아직 오지 않은 사랑도 첫사랑일 것”이라고 부기했다.

이번 테마시집에는 이들 외에도 김병호 김연숙 김이듬 박경희 박철 서춘희 유계영 유현아 이설야 이재훈 이진욱 정병근 천수호 하상만 강신애 김경인 김경후 김해자 박완호 백인덕 오민석 유기택 이영주 이우근 이정록 이창수 이현호 이호준 이훤 장성욱 조현석 황종권 권현영 김도연 김은경 김정수 문형렬 박소란 박시하 서윤후 손미 윤진화 이규리 조용미 함민복 등이 참여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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