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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과도 타협하는데 재벌과는 왜 타협 못하나”

입력 : 2018-07-21 03:00:00 수정 : 2018-07-20 21: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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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10년 만에 ‘나쁜…’ 특별판 출간 / 신자유주의 담론의 허구성 날카롭게 비판 / 글로벌 스탠더드 포장됐지만 약자에 불리 / 1990년대 외환 위기 사태도 그 연장선상 / 환란이후 외국 단기 투기자본에 시장 개방 / 어렵게 일군 전자·자동차 등 경쟁력 추락 / "한국 경제 양극화 심화 … 심각한 위기 상황 / 전략산업 육성 등 근본 체질 개선을 " 주문
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부키/1만5000원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장하준 지음/이순희 옮김/부키/1만5000원


“솔직히 김정은 위원장과도 타협하는데 왜 재벌하고는 타협 못 하는가. 대타협은 재벌이 무얼 원하니까 무얼 주자와 같은 도식적인 게 아니다. 다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같이 대화하자는 것이다. 지금 세계 경기 회복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저금리와 양적 팽창 등 억지로 돈을 퍼부어 만든 것이다. 제대로 된 경기순환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들이 결정하는 대로 정해진다. 또다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장하준 교수는 이렇게 단언한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출간한 지 10년 만에 다시 고국을 찾았다. 이 책 특별판 출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장 교수는 “한마디로 한국 경제가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2007년 10월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써서 대박을 쳤다. 국내에서만 10만부가 팔렸고, 해외에서도 70만부 이상이 나갔다. 그러나 이듬해 7월 불온도서로 낙인찍혔다. 이명박정권의 국방부가 그랬다. 반미, 반자본주의를 선동하는 반정부 도서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 책 내용을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자본주의를 지키려고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책이었다. 이를테면 미국의 뉴딜 정책과 산업정책, 박정희식 모델을 지지하면서도 한국 경제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장 교수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 담론의 허구성을 통박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근사한 구호 아래 신자유주의가 금과옥조처럼 여겨진 시대였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약자에게는 불리한 시스템이다. 당시 선진국은 이런 정책을 택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분명 대규모 경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1980년대 일본 거품 경제의 붕괴와 1990년대 우리나라 외환위기로 이어진 상황을 상기해보면 명약관화하다.”

장 교수의 책이 나온 지 불과 1년여 만인 2008년 9월 국제금융위기가 터졌다.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대공황 이후 최대의 금융 위기가 터진 것이다.

그러면 10년이 지난 2018년, 신자유주의는 종식되었을까. 장 교수는 이번에 낸 ‘나쁜 사마리아인들 특별판’ 서문에서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는 아직 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한국은 신자유주의 희생자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 경제상황은 10년 전과 유사하며, 갑질과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특별판’ 출간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면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연합뉴스

장 교수는 “미국과 영국 등 몇몇 선진국에서 보이는 경제성장은 저금리와 양적 팽창을 통한 거품 경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했다. 지금 선진국과 후진국 간 자유무역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 열한 살 먹은 장 교수 딸 유나의 친구들로 구성된 축구팀의 경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장 교수는 “앞으로 10년 후에 와서 또 비슷한 소리를 하면 우리나라는 정말 앞날이 캄캄하다”고 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면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지금 한국 경제 위기의 뿌리는 1990년대 금융자유화에 있다는 게 장 교수의 논리다.

“9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금융자유화가 잘못되는 바람에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 결과 고용 안정성이 약화되고 불평등도가 높아져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살기 힘든 나라가 됐다.”

장 교수는 이어 “외환위기 직후부터 산업정책 다 포기하고 외국 단기 투기자본에 문을 열어서 기업들이 투자하기 어렵게 됐다”면서 “조선, 자동차, 전자 다 우리가 (경쟁국을) 밀어낸 건데 지금은 중국에 따라잡히고 선진국을 추격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 국내 경기를 논할 때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제성장기 때처럼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략 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나가야 한다.” 예컨대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주도로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GPS, 생명공학 산업을 일으켰다.

장 교수는 최근 논란 중인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도 복지가 뒷받침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업에 다니다 실직하고 생계형 창업을 하다 보니, 다른 나라 같으면 자본가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자본가가 된 것”이라면서, “동네 자영업자에게 재벌기업과 똑같이 최저임금 하라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거듭 재벌기업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문했다. 최근 이슈가 된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선 “미국의 관세 부과액이 엄청난 거 같지만, 중국의 전체 수출량에 비하면 비중이 크지 않다”며 “시끌벅적하지만 영향은 훨씬 작다”고 풀이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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