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의 요체는 ‘3기’로 집약된다. 강한 무기와 사기, 군기가 있을 때 전투력은 극대화된다.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할까.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무력이 칼집이라면 정신력은 시퍼런 칼날”이라고 했다. 무기보다 군기와 사기가 전투에서 더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무력과 정신력의 비중을 1대 3으로 보았다.
첨단무기라고 승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군의 사기와 군기가 땅에 떨어지면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남베트남군은 미군의 최신무기로 무장한 110만명의 병력과 세계 4위의 공군력을 보유했었다. 그런데도 기본적인 전투물자조차 보급받지 못한 북베트남군에 무릎을 꿇었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4성 장군 김진선의 베트남전 수기 ‘산 자의 전쟁, 죽은 자의 전쟁’을 보면 답이 나온다. “북베트남군은 조국에서 외세를 몰아내겠다는 사명감이 뼛속까지 스며든 군대였다. 그래서 죽음을 초월하는 용기와 저항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투사에 가까운 존재였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북베트남군에 부패하고 군기가 빠진 남베트남군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싸워 이겨야 할 명분과 대상이 분명해야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군기가 바로 설 수 있음을 북베트남군은 웅변한다. 우리 군을 돌아보게 된다.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 표현을 삭제하더니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 한·미동맹 챕터를 없애고 다른 주제의 하위 주제로 격하시켰다. 북한을 자극한다면서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자체 훈련도 축소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국방부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안보환경이 조성됐다”는 이유를 댔지만 북한의 심기를 살피는 정부에 국방부가 코드를 맞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과도한 정치권·북한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은 적’ 표현 삭제는 안보 자해행위와 같다. 핵무기와 120만명의 정규군을 보유한 북한이 아니면 누가 우리의 적이란 말인가. 북한 노동당 규약에는 여전히 한반도 적화통일 목표가 명시돼 있음을 국방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정신전력교육의 목적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정신력의 함양이다. 엄정한 군기를 확립하고 사기를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적이 누구이고 왜 싸워야 하며 같은 편은 누구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들이 모호해졌으니 장병들의 강한 전투의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기 저하는 불을 보듯 빤하다.
정신전력교육은 이제 대적관보다 역사관 위주로 진행된다고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에 맞춰 육군은 집중 정신전력교육에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국가관’을 반영하도록 했다. 반일 감정이 주입될 것임은 불문가지다. 이러니 “주적은 이제 일본”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민주주의 국가의 군이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고 정치인들은 군의 전문성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군이 탈정치화에 실패하면 정치권의 시녀가 되고 전투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우리 군은 안보논리보다 정치논리에 치우쳐 대북 경계심 약화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군의 기강 해이도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군병원 군의관들이 출퇴근 시간을 조작해 야근수당을 챙겨오다 적발됐다. 지문인식기로 출퇴근이 기록되는 점을 악용해 실리콘으로 가짜 지문까지 만들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국산 신형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천궁’은 오발돼 공중에서 폭발했다. 공군 대령이 로펌 취업을 위해 군사기밀을 유출해 기소된 사례도 있다. 총체적 군기 난맥 상황이 계속되는 국면이다.
군은 국가 수호의 최후 보루다. 우리 군의 군기와 사기, 대북 경계심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강군은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국가를 지켜낼 수 있는 군대다. 국민 신뢰를 잃은 군대치고 강군이 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묻게 된다. 국방부는 우리 군이 진정 강군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
김환기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