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고유정(36·사진 가운데)씨에 대한 결심공판이 연기됐다.
이날 고씨는 “검사님이 무섭다”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해 재판 휴정을 이끌어냈고, 강씨 유족 측은 “고씨가 무섭다”고 평했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정봉기)는 18일 오후 2시부터 201호 법정에서 고씨에 대한 7차 공판을 속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 신문이 시작되자, 고씨가 “검사님이 무섭다”며 진술을 거부하면서 재판은 20분여분간 휴정됐다.
이후 재판이 재개됐고, 고씨 측 변호인이 ‘최후진술 및 피고인 신문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재판을 한 차례 더 속행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결심공판은 다음달 2일로 미뤄졌다.
앞서 고씨 측은 지난 11일에 이어 14일에도 공판기일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 “검사님 무서워” 울먹인 고유정… 방청석선 “가증스럽다” 고성 터져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인 고씨에게 ‘전 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 과정'에 대해 물으며 신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고씨는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경찰 조사 때 말한 내용과 같다. 정말 미친X처럼 저항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 재판으로 (검찰)신문을 미뤄 달라”며 “저 검사님과 대화할 수 없다. 아들이랑 함께 있는 공간에서, 불쌍한 내 새끼가 있는 공간에서 어떻게…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 여론이 저를 죽이려 한다”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재판 일정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하자, 고씨는 “검사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겠다. 저는 재판부만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방청석에서는 ‘가증스럽다’ ‘뻔뻔한 X’ 등 고씨를 비난하는 고성이 쏟아지기도 했다.
◆피해자 강씨 유족 측 “처음 재판 받는 사람 맞나? 정말 능숙해”
피해자인 강씨(사망) 유족 측 변호인은 공판이 연기된 후 “(고유정이)형사 재판을 처음 받는 사람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능숙하다”며 "고씨가 무섭다”고 했다.
이날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강문혁 변호사는 18일 오후 5시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취재진에 “고씨가 피의자 신문 당시 졸피뎀 성분과 사체 손괴 등 공소 사실의 핵심적인 증거에 대해 ‘모르겠다’ ‘진술하고 싶지 않다’ 등 구체적인 진술을 피했다”면서 “하지만 자신이 처했던 위기상황과 생각들을 설명할 땐 주저하지 않고 상세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너무나 능숙하게 답변을 하면서도 유족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고 범행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을 보며 ‘무섭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강 변호사는 이날 피고인 측이 최후변론 등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공판이 연기된 점에 대해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공판에서 고씨 측 변호인이 피고인 신문에 동의했고, 7차 공판에서 충분히 예정된 절차임에도 준비가 되지 않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재판을 미루려고 하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강 변호사는 이어 “최후변론을 미뤄 심리 마무리 단계인 결심공판을 늦출 수는 있어도 선고를 막을 수는 없다”며 “이같이 무리하게 형사소송 절차 진행을 늦추면 반드시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판부 “의붓아들 사망 사건과 병합 추후 고려”… 고씨 측 “병합될 줄 알고 최종변론 및 피고인 신문 준비 미처 못해”
제주지검은 지난 7일 고씨를 의붓아들 A(5)군 살해 혐의로 추가 기소하고 재판 중인 전 남편 살인사건과 병합 신청했다. 고씨 측 역시 병합을 원했다. 이에 14일 7차 공판에선 두 사건의 병합 여부도 변수로 떠올랐었다.
하지만 재판부가 “두 사건의 병합 심리 여부는 추후에 판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날 공판은 예정대로 결심공판으로 진행됐다.
이에 고씨 측 변호인은 재판 시작부터 “검사도 병합을 신청하고 우리도 병합을 요청해 (의붓아들 사망사건과)병합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래서 이 사건(전 남편 살해 사건)에 대한 최종 변론과 피고인 신문 준비가 제대로 안 됐다. 공판을 한 차례 더 속행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판이 연기된 후 고씨 측 변호인은 “재판을 진행하며 확보한 객관적인 증거를 아직 보여주지 못해 (재판 연기를)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또 의붓아들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는 “검찰은 전 남편 살해사건은 ‘전 남편에 대한 분노’ 때문에, 그보다 앞서 발생한 의붓아들 사망 사건은 ‘현 남편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모순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검찰이 두 사건을 ‘계획범죄’로 만들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고씨는 지난 5월25일 제주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씨를 흉기로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여러 차례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강씨의 시신이 아직 발견되지 않음에 따라 현재 시신 없는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고씨는 그에 앞서 3월2일 오전 4시부터 6시 사이 의붓아들 A군(현 남편의 친아들)이 잠을 자는 사이 아이의 머리를 뒤에서 압박해 숨지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두 사건의 병합 여부는 19일 공판준비기일 이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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