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대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 속도가 빠르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31일 0시 현재 전국 31개 성에서 '우한 폐렴'의 누적 확진자는 9692명, 사망자는 213명이라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11명(1월 31일 17시 기준)의 확진자가 발생하며 시민들 사이에는 감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손 세정제, 마스크 등 예방 물품이 온·오프라인상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눈을 통해서도 감염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안경이나 선글라스도 구비해야 한다는 글이 SNS에 다수 게시됐다. 일부 누리꾼은 “각막으로도 전염된다는 데 마스크만으로 효과가 있을까”라며 우려를 표했다.
현재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경로는 감염자의 기침이나 재채기에서 나온 작은 물방울에 바이러스가 포함돼 감염되는 ‘비말 감염’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현재 SNS상에 공포심을 심어주고 있는 ‘각막 전염’이란 어떤 경로를 통해 일어나는 전염을 말할까? 또, 안경을 착용하는 것이 각막 전염을 막아주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검증 과정]
◆눈으로 감염이 된다고? ‘각막 전염’ 무엇일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각막을 통해 전염될 수 있다는 주장은 환자를 치료하던 중국의 한 의사가 각막에 의해 전염됐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면서 퍼지기 시작했다.
중국 베이징대 제1 의원 호흡기·중증 의학과 주임인 왕 광파(王廣發) 박사는 자신이 눈을 통한 바이러스 침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왕 주임은 2003년 중국에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할 당시 일선에서 활동한 전문가로 알려져있다.
왕 주임은 지난 22일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베이징 병원에서 환자를 진찰할 때 N95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방역 고글을 쓰지 않았다”며 “바이러스가 결막에 먼저 들어간 다음 전신에 도달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후 ‘우한 폐렴 각막 전염’, ‘각막 전염’, ‘우한 폐렴 눈’ 등이 화제에 오르며, 심지어는 “감염자와 눈만 마주쳐도 감염이 된다”는 식의 루머까지 퍼졌다.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눈을 통한 전염은 눈 점막을 통한 전염 경로를 말한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29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눈의 각막을 통해 들어가는 게 아니다”라며 “눈을 통한 전염은 코, 입의 점막처럼 눈 내부의 촉촉한 점막을 접촉하면서 생기는 감염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눈을 통한 감염의 대부분의 경로는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서 흩어진 비말을 손으로 만져서 눈을 비볐을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
전제훈 안과 전문의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에이즈 등 질병의 경우 피가 눈 점막을 통해 침투하는 경우가 있다”며 “1975년, 1996년도에 일반 감기나 에볼라 바이러스가 눈 점막 통해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관리본부 역시 모든 감기, 인플루엔자, 독감이 코나 눈 또는 입의 점막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감염된다고 설명한다. 일반 감기와 같이 오염된 손으로 눈, 코, 입을 만지면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만 특별한 증상이 아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같은 코로나바이러스인 사스 역시 감염자의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비말이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 코, 입의 점막에 닿을 때 발생할 수 있다고 바이러스가 확산할 수 있다고 설명돼있다. 또한 오염된 표면을 만진 뒤 눈, 코, 입을 만질 때도 전염될 수 있다는 내용이 덧붙었다.
또한,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다르게 체액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눈의 점막에 붙어 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은 적다.
바이러스 전파 경로는 비말, 에어로졸, 공기전파 3가지로 꼽힌다.
일반적으로 비말액은 무게가 있어서 부유할 수 있는 거리가 1m 정도로 알려져 있다. 비말 감염은 밀접 접촉자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주된 경로다.
‘에어로졸’ 경로는 무거운 물방울들이 미세한 입자로 쪼개져서 한정된 공간에서 부유하면서 감염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환자와 밀접 접촉한 의료 환경이 아닌 이상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설명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의료기관 등에서 억지로 튜브를 넣고 가래를 빼거나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하는 등 기침을 심하게 유도하면서 하부기도로부터의 기침이 형성되면 비말액이 가벼워지면서 일시적으로 부유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의료현장에서 보호 안경 등 보호구를 높은 수준으로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안경 껴서 각막 감염 막자”?
그렇다면, 일상적인 환경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처럼 안경을 착용하는 게 예방에 도움이 될까?
물론, 감염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기침을 했을 때 안경이 일차적으로 침이 튀는 것을 일부 막아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 안경을 보호구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침이 튀었을 때 물리적으로 장벽이 하나 더 생기는 거니까, 일시적으로 막아줄 수는 있을 것”이라며 “쓰고 안 쓰고가 감염의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우연히 튀어서 점막의 노출 기회가 생길 것을 막아줄 가능성이 있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다만 의료환경이 아닌 이상 눈 점막에 감염자의 침 등 분비물이 직접 닿아 감염이 이뤄지는 경우가 흔치 않다.
감염자와 밀접한 접촉이 없는 한 보안경이나 안면을 가리는 특별한 보호구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눈을 통한 바이러스 감염을 주장한 왕 주임 역시 다음날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왕 주임은 “일부 고글에 재고가 없다고 들었다”며 “내 글의 초점은 최전선 임상의가 눈 보호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왕 주임은 “길을 걷는 일반 시민들에게는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검증 결과]
즉, ‘각막 감염 막기 위해 안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절반의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안경을 끼는 것 자체가 눈 점막에 대한 바이러스의 접촉을 물리적으로 막아줄 순 있다.
하지만 에어로졸을 통한 전염이나 감염자와의 밀접 접촉이 일상적으로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에, 눈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구 착용이 필수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는 점막을 통한 전염도 타액이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는 행위의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손을 잘 씻고 세정제를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질병관리본부에서 가장 당부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위생과 기침 예절이다”라며 “마스크를 쓴다면 그게 하나의 차단벽이 되어서 비말액이 튈 경우를 줄여주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는 게 도움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장현은 인턴기자 jang54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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