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군사적 팽창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 역대 최대 규모의 군비지출을 공언했다. 오랫동안 내세워왔던 전수방위(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쓰는 일) 원칙에서 벗어나 주변국을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다. 한국의 전략적 억제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벌어질 수 있는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격차를 단숨에 좁힐 ‘게임 체인저’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60조원 넘어선 일본 국방비…첨단 기술 개발도
방위성이 최근 발표한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국방예산안 규모는 5조4989억엔(약 60조8000억원). 내년도 한국 국방예산안(52조9174억원)보다 8조원 많다. 방위성 예산안이 재무성과 국회 심사를 거쳐 내년 3월 확정되면 역대 최대 규모의 군비지출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생산하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4대와 F-35B 2대를 추가로 도입하는데 666억엔(7373억원)을 배정했다. 일본은 F-35 147대를 확보해 중국과 러시아의 스텔스기에 대항한다는 방침이다.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F-35를 많이 운용하는 국가가 되는 셈이다.
F-35A에 탑재해 상대의 위협 범위 밖에서 타격하는 스탠드오프(Standoff) 미사일 구입도 추진한다. F-35A 내부무장창에 장착되도록 설계된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500㎞에 달한다.
일본 항공자위대가 현재 운용 중인 F-2 전투기를 대체할 차기 전투기 개발 관련 예산으로는 587억엔(6498억원)을 배정했다.
F-35의 성능을 뛰어넘는 6세대 전투기로 개발될 차기 전투기는 2035년부터 일선에 배치될 예정이다. 인공지능(AI)으로 비행하는 무인기 3대가 차기 전투기 1대와 편대를 구성, 공중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2035년 이후 공중전이 무인기에 의해 이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차기 전투기 조종사의 생존률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차기 전투기와 함께 움직일 무인기는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과 더불어 공대공 미사일로 적 전투기를 공격하는 능력도 갖출 것으로 보인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개발을 담당하며, 미국이나 영국 업체가 기술 협력 방식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산케이신문은 미국 록히드마틴과 보잉, 영국 BAE시스템스와 롤스로이스 등 7개 기업이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F-35B가 탑재될 호위함 가가를 경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사업에는 231억엔(2557억원)이 반영됐다. F-35B의 안전한 운용을 위해 비행갑판을 보강하고 뱃머리 모양을 사각형으로 바꾼다. 일본은 이즈모급 호위함 이즈모와 가가를 경항모로 개조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올해 이즈모 개수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호위함 54척을 확보하기 위해 2척을 추가 로 건조하고 잠수함 1척을 신규 도입하는 방안도 예산안에 추가됐다.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응에는 1247억엔(1조3800억원)을 배정했다. 저고도로 불규칙하게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한 자동경계관제시스템(JADGE) 성능개선에 예산을 투입하고, 패트리엇(PAC-3 MSE) 미사일을 추가 구입한다. 지난 6월 배치 중단을 결정한 이지스 어쇼어를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는 내년도 예산액을 명시하지 않은 채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F-15J 전투기에 사거리가 900㎞를 넘는 미사일을 장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미국이 개발한 재즘-이알(JASSM-ER) 장거리 공대지미사일과 유사하다. 공중전에 중점을 둔 F-15J가 전략적 타격 능력을 갖춘 전투기로 탈바꿈하는 셈이다. 음속의 5~10배 이상에 달하는 속도를 지닌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도 진행된다.
자국산 C-2 수송기를 전자정찰기 RC-2로 개조하는 사업도 예산안에 포함된 상태다. 터보프롭엔진을 사용하는 EP-3와 YS-11과 달리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RC-2는 보다 먼 거리에서 더 빠른 속도로 전자정보 수집 등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억제력 약화…비대칭 능력 강화해야
일본의 군비증강은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상당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국이 일본 항공자위대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분야는 장거리 공대지 타격능력이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전투기 숫자는 많지만 지상공격 분야는 취약했다. 하지만 일본이 공격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이같은 우위는 힘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일본이 F-35A와 F-15J에 공중 발사 장거리미사일을 장착하면, 한국 공군 F-15K 40대에 쓰이는 타우러스 미사일(사거리 500㎞)로는 견제가 쉽지 않다. 한국형전투기(KF-X)에 국산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장착될 예정이지만, 2030년대에야 실전운용이 가능하고 개발 성공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다.
해상초계기와 전자전기, 호위함 전력을 늘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해군은 차기구축함(KDDX), 경항공모함, 잠수함 등을 건조하면서 함정의 대형화를 통한 전력증강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양적인 측면에서 일본이 한국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구축해 원양작전을 강화하면, 한국 해군은 한반도 연안으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해군이 경항모 전단 구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일본도 이즈모급 호위함을 개조한 경항모 2척을 갖고 있어 전력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물량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제와 안보의 버팀목인 해상교통로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이 무력화될 수 있다. 하지만 양국간 경제력 격차를 감안하면, 전통적 방식의 군비경쟁에서 한국이 이길 가능성은 낮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확보하기 어려운 비대칭전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탄도미사일이나 순항미사일은 일본이 단기간 내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이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하고 있지만, 미사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처럼 탄도미사일을 개조하고, 감시정찰능력을 강화해 대함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레이저나 무인기도 기술적 격차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수백대의 드론을 동시에 움직이는 군집드론 공격은 방어하기가 매우 어려우면서 가격도 저렴해 유사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군 소식통은 “재래식 군비경쟁으로는 일본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쉽게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를 발굴해 전략적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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