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부모들 “초기엔 두렵고 혼란” 토로
“우는 아이 달래다 웃는 모습 보며 행복
그때서야 비로소 ‘내 자식이구나’ 실감”
초등생 친자녀 잃고 두 아이 입양 부모
“기질 다른 아이들 자라며 닮아가 신기
주변선 선행했다지만 받은 게 더 많아”
‘언니는 엄마가 낳았지만 난 아니잖아’
아이 투정에 ‘낳지 않아도 가족’ 토닥여
“나도 이타적 사랑할 수 있구나 깨달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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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 사는 윤혜숙(52)씨는 막내아들이 새 가족이 된 2007년 첫날을 잊지 못한다. 한없이 귀여울 줄만 알았던 아이를 안는 순간 “낯설다”라는 말이 먼저 입에서 나왔다. 갓난아이였지만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그는 “이 아이가 내 아이야? 어떻게 안아야 하지?”라고 당황하며 아이를 받았다.
낯선 곳에 처음 온 아이는 며칠간 많이 울었다. 입양 전부터 “이 아이를 정말 사랑할 거야”라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지만 처음엔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사흘이 지나고 드디어 아이가 웃기 시작했다. 2주쯤 지났을까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며 달래고 있는데 문득 “아∼이제 이 아이가 내 아이구나”라는 걸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 자녀를 두고 있는 윤씨는 막내아들이 커갈 때마다 행복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윤씨는 15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아이가 위탁모를 잊고 새롭게 정착을 하려면 아이 나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부모가 입양에 대한 환상과 미담들을 보고 아이를 데려오지만 실제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면서 이런 고민과 갈등은 감동으로 바뀐다.
윤씨의 막내아들은 어느덧 중학교 2학년이 됐다. 그는 “아들은 저랑 기질이 많이 다른데 너무 사랑스럽다”며 “지금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 여기고 살았는데 아이를 통해 나도 이타적인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아이가 “엄마∼”하고 부를 때면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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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고, 낯설고, 두려웠다”
입양 전 부모들은 ‘입양’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선행의 모습 혹은 예쁜 아이의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입양부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밖에서 보이는 입양의 환상을 벗어나는 순간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와 아이 모두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발을 디디는 만큼 두려움과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9년차 입양엄마 오모(40)씨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서 입양 대상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하며 입양을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입양을 꿈꿔온 그였지만 막상 아이가 집에 왔을 때 “아이가 시설에 있을 때보다 잘해줄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밀려 왔다. 혹여 아이의 생모가 찾으러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아이가 오씨를 빤히 쳐다보는데 “이제 어쩌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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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입양되자 마자 열이 나고 아팠다. 병원 진찰 결과 중이염이 심했다. 항생제를 먹이고 물수건을 갈아주며 며칠밤을 지새웠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가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 먹고 잘 놀았다. 오씨는 “애 입장에서는 사는 세계가 바뀐 것인데 까칠하지 않고 하나하나 유심히 관찰하며 잘 적응했던 거 같다”며 “하루에도 몇 번씩 ‘부실한 엄마한테 맞춰서 네가 참 애쓰는구나, 고맙다’고 되뇌였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아이를 공부를 시킬 때 저는 괴롭히는 엄마이고 맛있는 걸 사주면 내 마음을 잘 아는 엄마가 된다”며 “다른 엄마가 아니다. 전 별 특징이 없는 그냥 ‘엄마’였다”고 말했다.
6년째 입양한 둘째딸을 키우고 있는 김모(42)씨는 딸아이가 6살에 처음 가족이 되면서 친자녀인 큰딸과 다르다며 속상해했다고 고백했다. 한번은 큰딸 백일 사진과 돌잔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작은딸이 “언니는 엄마가 낳았지만 난 아니잖아”라고 소리쳤다. 김씨는 작은딸을 엄마 배 속에 넣었다 빼는 시늉을 하며 달래도 봤지만 단단히 삐친 둘째 마음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에게 ‘꼭 낳지 않아도 가족이 되는 방법이 입양이야. 너는 입양으로 엄마아빠의 가족이 되었잖아. 그럼 입양이 나쁜 거야?’라고 물으니 아이가 ‘나쁜 게 아니네’ 하며 그제서야 웃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낳은 아이나 입양한 아이나 똑같은 내 자녀”라며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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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으로 나아가는 입양
입양은 입양 부모에게 한 단계 성숙하는 과정과 행복을 선사한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김모(51)씨는 2012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를 사고로 잃었다. 심리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닌 지 2년쯤 지나서였나. 남편과 연애할 때 입양 얘기를 했던 게 생각 나 남자아이 둘을 위탁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정위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에세이를 쓰는 시간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늘에 간 아이가 여전히 눈에 밟혀서였다.
두 아이는 너무도 달랐다. 성격부터 먹는 음식, 행동까지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큰 아이는 활동적이었고 작은 아이는 차분했다. 신기한 건 둘이 함께 커가며 서로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씨는 “지금은 서로 다른 점을 보완하며 둘도 없는 형제가 됐다”며 “우리도 ‘너희 둘은 우애 좋게만 지내라’고 말해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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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김씨의 슬픔은 줄어들었다. 가정위탁 5년 뒤 입양 서류를 쓸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성장과정에서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김씨는 그때마다 “걱정하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는 너희를 지켜줄 거야”라고 속삭이며 달랬다. 그는 “주변에 입양을 했다고 말하면 좋은 일을 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부부가 많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8년차 입양아빠 김모(49)씨는 “입양은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부부의 모습은 아직도 서툴고 혼란을 겪고 있지만 우리 아이는 당당하게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건강하게 자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8년 동안 아이를 키운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입양하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양하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안승진·정지혜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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