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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통합을 염원했던 그해 삼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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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25 23:52:32 수정 : 2025-02-25 23: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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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 좌우 갈등에 통합 무산 반면교사 삼아
탄핵 정국 혼란 넘어 모두의 민주주의 실현되길

3·1운동이 발발하고 어느덧 106번째 봄을 맞는다. 12·3 계엄 이후 한국 사회를 덮친 갈등과 분열의 쓰나미 속에서 삼일절을 맞으며 제일 먼저 1948년 3월1일의 풍경이 떠올랐다. 해방되고 세 번째 맞은 삼일절의 주인공은 유관순이었다. 그 무렵 전영택이 쓴 전기 ‘순국 처녀 유관순’이 출간되었고, 3월1일에는 윤봉춘이 감독하고 이구영이 각색한 영화 ‘유관순’이 개봉했다. 연극 ‘순국 처녀 유관순 혈투기’도 무대에 올랐다.

3·1운동은 전민족적인 항일운동으로 이후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지탱하고 독립운동을 추동한 절대적 동력이었다. 하지만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 갈등 속에 삼일절은 민족 모두가 함께 경축하는 기념일이 되지 못했다. 1946년 미군정이 3월1일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보신각에서 기념식을 거행했지만 좌익은 남산공원에서, 우익은 서울운동장에서 별도로 삼일절을 기념하는 시민대회를 열었다. 이듬해인 1947년에도 좌우가 삼일절 기념행사를 따로 개최했고, 급기야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전국에서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3·1운동에서 빛난 민족 통합의 정신을 기쁜 마음으로 기념해야 할 삼일절이 민족 분열을 여실히 드러내는 비탄의 기념일이 되고 말았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1948년 3월1일, 미군정은 극도의 경계심으로 3월1일에 일어날지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그런데 대중은 유관순의 전기를 읽고 영화와 연극을 관람하며 삼일절을 기념했다. 영화 ‘유관순’의 관객들은 독립의 염원을 담은 전민족적 항쟁의 상징으로 유관순과 함께 만세를 불렀던 이웃이 옷장 깊숙이 파묻었다가 꺼내 여주인공에게 건네준 낡은 태극기를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삼일절을 맞으며 대중은 평범한 10대 여성으로 독립의 대의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순국열사’ 유관순을 통해 민족 통합의 염원을 표출했다. 그것은 다툼을 마다치 않는 현실 권력에 대한 강한 질타였다. 영화 ‘유관순’의 제작자 방의석은 “다 같이 반성하고 참회해서 선열과 애국지사의 뜻을 받들어 삼팔선을 우리의 손으로 부수고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서 한데 뭉치자”라는 절규에 가까운 제작 소감을 남겼다. 하지만 1948년 삼일절에 분출했던 대중의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해방 정국에서 좌우 갈등은 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으로도 나타났다. 좌익은 인민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우익을 반민주주의자라고 공격했다. 우익은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프레임으로 좌익을 공격했다. 반면 중도 노선의 신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민족 갈등과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의 길을 여는 절차적 가치로 여겼다. 안재홍은 좌우의 편향성과 갈등을 극복하고 통합을 실현할 수 있는 ‘만민공생’의 공영국가를 꿈꿨다. 하지만 신민주주의 역시 좌절하고 말았다.

2025년 봄, 한국 사회는 전에 없이 혼란스럽다. 다가올 삼일절이 1919년 3월1일처럼 토요일이다. 12·3 계엄 이후 그랬듯이 이번에도 광화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집회가 동시에 열릴 것이다. 이제껏 그랬듯이 광장에 선 시위 대중은 양자 간에 정반대의 주장을 하면서도 물리적 충돌 없이 집회를 평화적으로 마무리할 것이다. 그리고 귀갓길에 들여다본 스마트폰에서 정치인, 평론가, 유튜버들이 치르는 열전을 접하며 한편에 서거나 혹은 극단적 분열이 불러올 파국을 우려할 것이다. 석 달째 반복되고 있는 익숙한 풍경이다.

삼일절을 맞으며 다시금 통합을 염원했던 1948년 3월1일을 떠올려 본다. 민주주의가 갖는 중도와 통합의 가치에 주목한 신민주주의를 새겨 본다. 그때는 좌절했지만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살아 있다. 사법 영역에서 절차 민주주의가 통합적·중도적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극단의 언어가 난무하지만 결국 절차에 승복하는 ‘모두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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