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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공연장은 질서정연하게 어지러웠다. 1, 2층 합쳐 60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이다 보니 매표소와 화장실 앞에 선 줄이 구불구불 어지럽게 뻗어 나갔다. 사람들은 적당히 서로에게 거리를 두고, 그러면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노력 중이었다. 이벤트용으로 설치된 인생네컷 사진관과 기념품 숍 앞에는 오히려 사람이 적었다. 공연 시작이 코앞이었고, 기념품들이 일찌감치 완판된 탓이었다.
나는 적당히 설레는 기분으로 티켓을 들여다보았다. 맛있는 것을 먹고 기대되는 배우의 공연을 보는 여유로운 저녁, 창작뮤지컬 특유의 낯설면서도 인상적인 노래가 자연스레 내 입에 옮겨붙는 순간의 즐거움. 인터미션이 없는 110분짜리 짧은 공연이 내게는 열 배쯤 되는 시간 동안 꽉 찬 행복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어떻게 찾아냈을까 싶을 만큼 적격인 배우들이 커튼콜을 받을 때까지 나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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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흡족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나서려는데 옆 사람이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앉은 채 상체를 완전히 뒤로 돌려 뒷사람과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공연 시작 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내 일행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유난히 몸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수차례 반복된 직원의 안내―뒷열의 시야에 방해되지 않도록 등받이에 등을 꼭 붙이고 앉아주십시오. 몸을 앞으로 숙이거나 옆 사람에게 기대시면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가 그에게는 전혀 입력되지 않은 듯했다. 암전이 된 뒤 나는 무대에만 집중했지만 아무래도 그는 그 자세 그대로 공연을 끝까지 관람한 모양이었다. “몸을 그렇게 내밀고 계시면 어떡해요? 뒤에서 하나도 안 보이잖아요.” 뒷사람의 항의에 그가 손가락을 내밀어 이미 통로로 나가고 있는 다른 관객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옆 사람은 나보다 더 튀어나가 있던데요?” 어처구니없어하는 뒷사람에게 이번에는 그가 쏘아붙였다. “그쪽이야말로 뒤에서 계속 의자 발로 차셨잖아요?”
일행과 나는 반대편으로 빙 돌아 통로로 나갔다. 두 사람은 계속 싸우는 중이었는데 어떤 내용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옆 사람이 하는 일탈과 무례를 핑계 삼아 자기 잘못을 합리화하는 비겁함도, 줄기차게 의자를 걷어차 다른 관객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이기심도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저 사람들도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티켓을 예매하고 객석을 헤아렸을 텐데. 은근하고 집요한 싸움이 이어지는 110분 동안 그들의 머릿속에는 무대도 노래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쁜 쪽으로, 누구도 얻을 게 없는 쪽으로만 나아가는 싸움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장면을 곱씹으며 프로그램북을 뒤적이고, 배우들의 차기작을 찾아볼 소중한 시간을 창백한 객석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데 낭비할 두 사람을 떠올리니 마음이 차가워졌다. “연출도 재미있고 마침맞은 노래에 연기도 조명도 전부 다 좋았는데. 이게 다 얼마나 좋았는지 저 사람들은 영영 모르겠지.” 나는 그들의 얼굴을 잊기 위해 13번째 넘버를 흥얼거렸다. 14번, 혹은 15번일지도 몰랐지만 아무려나 상관없이 그저 좋았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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