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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하지 말아주세요” 음성안내, 공공기관 민원 직통 전화엔 왜 없나요?

입력 : 2021-02-04 22:00:00 수정 : 2021-02-05 10: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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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집콕 탓 소음 등 민원 급증
41% “하루 절반 화난 민원인 상대”
민원응대 공무원 우울증 ‘고위험군’
폭언 경감 효과 큰 ‘산안법 안내’
공공기관은 콜센터 위주로 시행
“직통전화도 보호조치 필요” 목청

“국민 혈세로 먹고살면서 말이 많아. 당장 해결해줘 XX야.”

 

경기도의 한 시청에서 소음 관련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요즘 전화를 끊기 무섭게 걸려오는 또 다른 전화에 쉴 틈이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소음 관련 민원이 급증한 탓이다. 많은 사람이 ‘화가 난’ 상태에서 전화하기 때문에 통화 자체가 고역일 때가 많다. 욕설이나 반말은 흔한 일이고, 대낮에 술주정을 하는 사람도 있다. A씨는 “불친절한 전화를 받을 때마다 우울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공공기관의 비대면 민원 응대가 늘고 있지만, 민원인 상대 직원에 대한 보호는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음성안내 등의 장치를 마련했으나 공공기관에서조차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시·도·군청이나 주민센터, 공공기관 사업소 등 공공부문에서 근무하는 감정노동자 상당수는 민원인의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경상남도감정노동자권리보호센터가 지난해 공공부문에서 민원 업무를 맡은 감정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85.8%가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민원인과의 통화에 할애하고 있었고, ‘화가 난 민원인’과의 통화에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쓴다는 응답도 41.2%에 달했다. 충남 서산시가 지난해 민원 업무 담당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이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이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8년 10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시행으로 사업주는 고객 응대 노동자를 고객의 폭언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조치는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는 문구 게시 또는 음성안내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치료 등이다.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 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상담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 중 음성안내는 효과적인 장치로 꼽힌다. 통화 연결 전 신호음 대신 “고객님의 말 한마디가 고객 응대 상담원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응대근로자 보호조치가 시행됩니다. 폭언 등을 하지 말아주세요” 등의 멘트를 내보내는 것이다. 간편한 조치이지만 효과는 꽤 크다. 서울시 감정노동종사자 권리보호센터에 따르면 2017년 GS칼텍스에서 음성안내를 시행한 결과 상담원 스트레스가 54.2% 줄고 고객이 친절한 말을 건네는 비율이 8.3% 증가했다.

 

정부도 음성안내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공공기관 콜센터의 음성안내 시행률은 2019년 1월 25.5%에서 같은 해 12월 97.1%로 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민원인 응대 업무를 하지만 콜센터로 분류되지 않은 곳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의 음성안내 시행률을 조사하지만 콜센터만 집계할 뿐, 그 외 부서는 집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실제 이날 서울시 민원 사이트인 ‘응답소’에 게재된 민원 접수용 직통번호에 전화를 건 결과 음성안내는 들을 수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통전화에까지 음성안내가 들어가면 연결음이 너무 길어져 시행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용·노동정책을 연구하는 국무총리 산하 정부 출연 연구원도 상담원 연결 전 음성안내를 들을 수 없었다.

 

민원 업무 종사자들은 음성안내 확대를 요구한다. 이정훈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소장도 “민원 접수 통로가 다양화돼 보호조치를 콜센터로만 국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응대가 이뤄지는 모든 분야로 보호조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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