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살포가 “국민 뜻”이라는 정치인
청년들의 ‘칠흑 미래’ 생각해 봤나
‘재정 파수꾼’ 없는 나라는 망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이런 말을 했다. “작은 거짓말쟁이는 한 사람을 속인다. 그러나 큰 거짓말쟁이는 나라를 속인다.” 큰 거짓말쟁이는 누구일까. 바로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그런 거짓말을 모를까. 다 안다.
영국 입소스(Ipsos)가 2019년 세계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직업별 신뢰도 조사. 한국 정치인의 신뢰도는 꼴찌를 했다. 정치인 말을 믿는다는 응답자는 고작 8%. 나머지는 믿지 않는다.
거짓말도 전염병처럼 번지는 것 같다. 대법원장까지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판사는 청직(淸職)으로 불린다. 법과 양심을 목숨처럼 여겨야 하기에. 그들의 수장이 낯빛조차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해바라기라면? 어느 누가 판결을 믿겠는가. 그런 나라는 볼 장 다 본 나라다. 민주주의? 차라리 우물로 달려가 숭늉을 찾는 편이 낫다.
최악의 거짓말이 있다. 그것은 국가재정을 두고 하는 거짓말이다. 다른 종류의 거짓말은 사람을 갈고, 선거를 통해 개선할 여지가 있지만 거짓말에 파탄 난 국가재정은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가 그런 나라다. ‘돈 살포’ 포퓰리즘에 탕진해 버린 재정. 더 이상 빚조차 낼 수 없게 되자 돈을 찍어냈다. ‘빚의 굴레’, ‘파탄의 굴레’가 찾아든다. 희망은 사라지고 캄캄한 절망이 나라를 뒤덮는다. 가난이 만연하고 탈출은 일상화한다. 국가조직은? 삶의 무덤일 뿐이다. 그런 나라는 망한다. 왜? 덫과 같은 존재로 변해 버린 정부가 누구에게 애국심을 호소하겠는가. 아널드 J 토인비의 ‘화석화한 문명’은 바로 그런 곳을 두고 한 말이다.
암울한 미래를 부르는 악성 거짓말은 만연한다. 상징적인 시발점은 2019년 5월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다. 그런 곳엔 가질 않던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재정 관료를 윽박질렀다.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뭐냐”며. 확장재정을 외쳤다. 교묘한 수사다. 수십년간 이어온 ‘40% 둑’은 허물어지고 이젠 60%를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그 선은 지켜질까. 턱도 없는 소리다. 정부가 만든 엉터리 재정전망에서도 2045년 99%까지 치솟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탕진은 그때부터 더 불붙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뿌린 지난해 4·15 총선, 달콤한 돈맛을 봤던 걸까.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빚 뿌리기가 다시 불붙고 있다. 돈 살포 외에는 관심이 없다. 재원에 대해서도, 빚더미에 오를 청년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너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니 내 상관할 바 아니다’라는 오불관언만 판친다. 무슨 진리라도 설파하는 양 “돈을 뿌려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자영업자 영업손실보상법을 만들겠다던 정세균 국무총리. “그런 것을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는 기획재정부 관료를 향해 “개혁 저항세력”이라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나랏빚 증가에 반대하는 재정 관료를 향해 “재정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윽박질렀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전도사처럼 행세한다.
탕진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이 ‘개혁’인가. 재정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라 곳간을 거덜내는 정치집단이 주인인가. “국가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그를 믿어도 될까. 그는 누구일까. 현 정권의 빚 살포 포퓰리즘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양치기 소년’ 별칭까지 붙어 있다. “쇼를 한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고(故)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의 말, “국민은 대통령과 여당 말을 믿지 않는다. 그래도 믿어야 할 곳 한 군데쯤은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경제정책 총괄 부서여야 한다.”
무슨 뜻일까. 국가재정의 파수꾼. 그것이 바로 재정 관료의 사명이라는 말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길 수는 없다. ‘혼 빠진’ 정치인에게 국가재정을 어찌 맡기겠는가. 재정 관료는 사명을 다하고 있을까. 그랬다면 빚 뿌리는 정치에 대한 비판이 지금쯤 봇물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입을 봉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침묵인가. 수십년간 나라의 기둥 역할을 해온 올곧은 재정경제 관료는 다 어디 갔나.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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