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5성급 호텔 6곳 “입실 불가”
미쉐린 별점 유명 식당들도 거부
‘어디든 출입 보장, 거부 땐 과태료’
法 있지만 단속 안 돼 ‘있으나마나’
국내 70여마리… 배변 등 철저 훈련
“입장 가능 표식 설치… 인식 바꿔야”

“그렇게 큰 개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못 타요.”
시각장애인 유석종(40)씨에게 택시는 편리하면서도 타기 어려운 교통수단이다. 흔히 택시를 ‘잡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하나의 관문이 더 남아있다. 택시에 ‘올라타는 것’이다. 어렵게 택시를 잡았더라도 유씨 곁을 지키는 안내견 ‘해달이’를 보고선 일부 택시기사는 고개를 저으며 떠나버린다. 해달이는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특별한 훈련을 받아 차 안에 실례를 하는 일이 없다. 차량 좌석이 아닌 바닥에 얌전히 앉아 있는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케이지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를 든다. 비장애인에게 간단한 택시 타기가 시각장애인에게는 ‘도전’이다.
택시뿐이 아니다. 식당이나 공공시설을 출입하려고 할 때에도 비슷한 벽에 부딪힌다. 해달이는 유씨에게 눈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다. 비장애인들에게는 덩치 큰 개로만 보이는지 “밖에 두고 오라”고 문전박대하는 곳이 많다. 유씨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안내견은 익숙하지 않은 존재인 것 같아 이런 상황을 이해는 한다”면서도 “다른 사람, 다른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11월 롯데마트 서울 잠실점에서 장애인 안내견의 출입을 막아 논란이 된 뒤 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5개월이 지났지만, 안내견 출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훈련된 안내견은 현재 국내에 70여 마리가 활동 중이다.
세계일보가 ‘세계 안내견의 날’(4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앞둔 27일 전국 호텔과 유명 음식점에 문의한 결과 안내견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안내견은 어디든 출입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을 거부한 자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대놓고’ 법을 위반하는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서울의 4성급 이상 호텔 17곳 중 5곳은 안내견 출입이 불가능했다. 시그니엘서울과 글래드여의도, 라마다서울호텔, 더스테이트선유호텔, 티마크그랜드호텔은 “반려동물은 출입 금지다. 장애인 안내견도 마찬가지”라는 원칙을 내세웠다. 장애인 안내견의 출입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고 설명했는데도 “동물은 입실 불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스탠포드호텔의 경우 장애인 객실만 안내견의 출입이 가능했다. 다만 해당 객실은 1∼2개뿐이다. 비장애인도 그 방을 선호해 예약이 수월하지 않은 편이다.
이밖에 부산센텀프리미어호텔(4성급), 라마다제주시티호텔(4성급), 선라이즈호텔속초(4성급) 등 관광지의 유명 호텔도 장애인 안내견 출입이 불가능했다.
미쉐린(미슐랭) 별점 등을 받은 서울 유명 식당 6곳에 문의한 결과 피에르가니에르서울·필경재·경복궁·용수산 4곳에서도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예비 장애인 안내견을 위탁받아 훈련을 돕는 ‘퍼피워커’ 김혜순(49)씨는 “사회 인식이 뒤처져 있음을 매일 실감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내견을 데리고 식당에 갔을 때 거절당하는 것은 일상”이라며 “북한산 국립공원에서도 ‘개는 안 된다’며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큰 소리로 화내는 사람도 많은데 개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회피하곤 한다”며 “최소한 국공립시설 같은 곳이라도 안내견 출입이 가능하다는 표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김훈 연구원은 “안내견을 거부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 명백한 차별이지만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단속을 하지 않는다”며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민·구현모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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