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 만들겠다는 건가
역사 수레바퀴 거꾸로 돌리면
경제위기 또 몰아닥칠 것
김대중(DJ) 정부가 출범한 해는 1998년이다. 위기가 몰아치던 때다. 외환위기.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역사적인 대사건이다. 그 위기 속에서 역사적인 획을 그은 것은 DJ다.
무슨 획을 그은 걸까. 40년에 걸친 관치(官治) 고질을 수술했다. 그는 눈만 뜨면 외쳤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장경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그는 자유시장경제 전도사였다. 당시 개혁을 두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수술이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DJ를 뺀 시장경제 개혁은 말할 수 없다.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관치 체제. 개발연대로부터 이어온 경제 질서다. 정부가 자본과 자원 배분을 주도했다. 심지어 기술 개발조차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그 유산이다. 자본도 기술도 없는 경제 황무지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체제에서는 규제와 간섭이 범람한다.
외환위기 이후는 다르다. 적자생존의 시대가 활짝 열린다. 무역·금융 장벽을 허문 개방 시대가 시작됐다. 보호주의 둑이 무너졌으니 누구도 정부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 몰락한 은행과 수많은 기업들. 공포스러운 무한 경쟁을 알리는 신호였다. 경쟁력을 잃으면 누구든 까마득한 파산 벼랑에 서야 한다.
기업·산업·국가 경쟁력…. 그때부터 경쟁력은 신탁의 소리와도 같다.
관치 청산, 시장경제 구축을 향한 몸부림. 그것은 나라경제를 살리기 위해 채찍질을 한 DJ의 경제철학이다.
반도체·전자통신·자동차…. 이들 산업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된 것은 그 이후다. 규제완화·노동개혁은 변하지 않는 화두 역할을 한다.
그런 역사가 없었다면? 아마도 역사의 행로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세계 9위의 경제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신탁의 소리도 있다. “빚은 무덤을 만든다.” 외환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빚으로 인한 무덤이다. 과도한 빚을 짊어지면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존속할 수 없다. 그 후 20년, 글로벌 금융위기·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지는 공포 속에서 나라곳간을 허물지 않으려는 ‘피나는 노력’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지금은 어떨까. 신탁의 소리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관치가 다시 판을 친다. 자고 나면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무더기로 만들어진다. “기업을 하려면 감방 갈 각오를 하라”고 한다. 기업인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도 아니다. “천재 한 명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고? 그런 말은 구시대의 화법으로 변했다.
시장경제·규제완화·노동개혁…. 그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부터 그런 용어는 입에 담질 않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 결과는 무엇일까. 갈수록 쌓여가는 규제와 비용의 덫. 기업들은 해외로 빠져나간다. 아예 문을 닫는 기업도 수두룩하다. 산업단지를 밝히던 공장의 불도 꺼진다. 이런 판에 고용이 늘겠는가, 소득이 불어나겠는가. 성장과 고용의 둑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허물어진 둑을 세금과 빚으로 메운다. 70만명이 넘는 공공 아르바이트로 통계를 장밋빛으로 꾸민다고 증발한 일자리가 다시 만들어지는가. 공허한 소득주도성장 구호 속에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나라곳간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텅 빈 곳간에는 빚 증서만 가득하다. 나랏빚은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만 따져도 조만간 1000조원을 넘는다. 그 빚은 청년들과 어린 세대를 짓누르는 빚 재앙이 될 것이 빤하다.
국민은 그것을 모를까. 청년들의 좌절은 바로 그로부터 비롯된다. 현 정부에 등을 돌린 2030세대. 자신들의 미래를 알기에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
관치는 부활하고, 시장경제는 허물어지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강을 막으면 어찌 될까. 흐름이 막힌 물은 범람한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흥성(興盛)은 끊임없는 바른 행동(善行)에서 비롯되고, 멸망은 끊임없는 잘못된 행동(惡行)에서 비롯된다. 길흉은 스스로 부르는 것이다.” ‘정관정요’에 나오는 위징의 말이다.
우리의 앞날은 무엇일까. 대선이 가깝다. 눈을 부릅뜨고 역사를 제대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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