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리처드 모리스에 따르면, 우리 헌법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은 과거 무시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에게 권리와 보호를 부여한 과정이었다...버지니아 사관학교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활동을 소화할 수 있는 여성의 입학을 허가하는 것이 더욱 완벽한 조국에 봉사할 능력이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여길 이유가 없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이나경 옮김,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블랙피쉬, 61쪽.
진보적인 성향의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긴즈버그가 연방대법원의 다수 의견으로 작성하고 렌퀴스트 당시 연방 대법원장 대신 낭독한 ‘미국 대 버지니아’사건 결정문의 일부입니다. 미국 헌법 역사라는 건 결국 과거 무시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에게 권리와 보호를 부여한 과정이었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1990년, 미국 버지니아의 한 여고생이 150년 전통의 버지니아 사관학교의 입학 허가를 구하면서 법무장관에게 항의했습니다. 왜 남성만 입학할 수 있고 여성은 입학할 수 없느냐고.
미국 정부는 남성만 입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수정헌법 제14조 평등 보호 조항을 어긴 것이라며 버지니아주와 버지니아 사관학교를 고소했지만, 지방법원은 정부의 평등 보호 이의 제기를 거부하며 버지니아 사관학교의 손을 들어줬지요.
이때 항소심인 제4 순회항소법원은 버지니아주가 다양성 측면에서 설득력 있게 해명하지 않았다며 지방법원의 판결을 삭제했습니다. 버지니아주에도 개선책을 선택하라고 요구했고요.
버지니아주는 이에 동일한 여성 프로그램인 여성 리더십 학교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고, 지방법원은 버지니아주의 새 계획이 평등 보호 조항의 요건에 일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항소법원도 지방법원의 판단을 확인하는 최종 결정을 내렸지요.
하지만 연방대법원 대법관 긴즈버그는 항소법원의 최종 판결이 아닌 최초 판결이 맞다며 그 자신이 직접 이 사건을 연방대법원에 고소한 뒤 1996년 원고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젠더 분류는 평등 보호 조항 아래 ‘보다 강화된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버지니아주는 헌법이 요구하는 ‘폭넓은 해명’을 제공하지 못하므로 버지니아 사관학교는 여성을 제외할 수 없다는 취지였지요. 그는 이때 연방대법원의 다수 의견을 작성했고, 렌퀴스트 당시 연방 대법원장 대신 결정문을 낭독한 것이죠.
버지니아 사관학교는 여성의 입학을 허용해야 했고, 몇 년 후 켈리 설리번이라는 여성이 첫 여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새롭게 쓰여지기 시작했지요. 그녀는 지난해 췌장암으로 사망했지만요.
‘미국 대 버지니아’사건 판결문을 비롯해 여성과 소수자 권리 보호에 힘썼던 긴즈버그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이 작성한 문서 13개를 담은 책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가 출간됐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아직 차별과 소외, 배제와 혐오 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넉넉한 한가위, 우리 사회의 약자를 향한 긴즈버그의 목소리가 그립기도 합니다, 당신과 함께 듣는.(20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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