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존중의 자세 유지된다면
종전선언·정상회담도 해결 가능”
美 “남북 대화 지지” 긍정적 평가
바이든 동맹 중시에 南 활용 노려
5개월 남은 대선정국 파장 예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잇따른 담화를 내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남북이 대화테이블에 복귀할지 주목된다. 김 부부장이 이틀 연속 임기말의 문재인정부를 향해 관계복원 손짓을 보내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향후 흐름에 따라 내년 3월 대선과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표면적으로는 일련의 담화가 경색된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화여지는 넓히면서도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주장하는 등 대화조건도 강화한 점으로 봐 낙관적으로만 볼 사안도 아니다. 성급한 대응보다는 담화의 진의를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다.
26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김 부부장은 전날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공정성과 존중의 자세를 조건으로, 종전선언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정상회담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과 같은 관계개선의 문제도 건설적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이날 “첫 담화 후 남한 정치권을 주시했다”면서 “경색된 북남 관계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평화적 안정을 이룩하려는 남조선(남한) 각계의 분위기는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부, 종전선언·연락사무소 재설치·정상회담 언급에 긍정 평가
청와대는 이날 김 부부장의 대화 재개 의지를 담은 담화에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신중하고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이 대화 재개 조건으로 내건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 등 선결 과제를 제시한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읽힌다.
실무 부서인 통일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통일부는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재설치, 정상회담 등 남북 간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문제를 건설적 논의로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밝힌 점을 의미 있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을 매개로 남북대화를 재개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또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등의 고강도 도발 행위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내놓은 점을 고려하면 김 부부장의 담화엔 대화에 좀더 방점이 찍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도 김 부부장의 담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간) 김 부부장 담화에 대해 “미국은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 종전선언이 마지막 옵션이자 기회… 김정은 뜻 담겼을 것”
김 부부장의 담화엔 다목적 배경이 읽힌다. 임기 말의 문재인정부 상황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정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등 여러 환경이 고려됐다는 이야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번 담화에 대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이 사실상 남측이 북한에 제의할 수 있는 마지막 옵션이자 기회라는 점을 북한이 인식한 것”이라며 “북한이 남측이 어느 정도 실천적인 신뢰조치를 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미국과의 대화에 앞서 남북관계의 복원부터 먼저 시도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어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대화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지 않은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북·미 접촉이 이전과는 달리 남북관계를 먼저 통하는 흐름으로 변한 환경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다.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문재인정부의 임기가 7개월 남짓 남은 남한의 변수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노무현정부는 임기 말인 10월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다. 당시는 야당인 이명박 후보의 대선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북한으로서는 현재가 노무현정부 당시보다는 시간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을 법하다.
이날 외교 전문가들은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밝힌 ’개인적 견해’라는 표현을 두고 대부분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뜻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주목할 대목은) 김 부부장이 다소 전향적인 대남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점을 꼭 밝혀두고자 한다’고 언급한 점”이라며 “개인적인 견해라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뜻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대화와 도발 양쪽 가능성을 다 열어 놓았다”며 “김 부부장이 ‘개인적인 견해’라고 밝힌 것도 형식상 대남 정책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향후 남북 전망은… “‘연락선 복원’부터 해야”
김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남측에 ‘긍정적 메시지’를 보내면서 공은 문재인정부 쪽으로 넘어왔다. 우리 정부는 남북경색 국면 타개를 위한 노력이 일부 성과를 보이고 있는 점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이날 “이러한 논의를 위해서는 남북간 원활하고 안정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남북통신연락선이 신속하게 복원돼야 한다”며 “정부는 남북통신연락선의 조속한 복원과 함께 당국간 대화가 개최돼 한반도 정세가 안정된 가운데 여러 현안들을 협의·해결해 나갈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전문가들도 관계 개선을 위해 우선 남북이 연락을 주고 받을 연락 수단부터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도 존중과 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이른 시일 내에 통신선 복원을 하는 게 첫 단계”며 “결국 상호존중과 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는 이어 한 템포 빠른 접근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로서는 북한의 진의를 좀 더 파악하기 위해 친서 교환을 하거나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조만간 통신선 복구→남북대화→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남북정상회담→추가 군사합의→종전선언 등의 빠른 일정을 소화해 내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내년 2월 개최되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중국 정부는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 남북이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다“며 “김 부부장의 발언에 비추어볼 때 북한은 내년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남·북·미·중의 4자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 센터장은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앞으로 열릴 남북, 남·북·미·중 대화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몇 달 사이에도 북한의 행보엔 대화재개와 경색 조장 등으로 엇갈리고 있는 만큼,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목소리도 강하다. 우리 측도 북한의 행보를 정밀 분석하며 다양한 대내외 환경을 고려해 밀도 있게 접근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배경이다. 임을출 교수는 “김 부부장이 연속적으로 담화를 내면서 종전선언 등 남북관계 복원의 선결조건으로 강조한 게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 유지”라며 “그런 만큼 북한은 우리 정부와 미국의 향후 언행 등 태도변화를 지켜볼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남북 당국의 의도와 별개로, 양측의 대화 진척 여하에 따라 5개월 남짓 남은 대선정국에 미칠 파장의 폭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전의 선거처럼 남북관계가 여야의 공방 대상으로 본격 소환될 가능이 크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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