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의 중요성이 곳곳에서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악화되어 있는 한·일 관계는 한·미, 미·일 관계와 대조적으로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악화된 한국과 일본의 관계 한복판에는 일본 해상초계기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 초계기는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광개토대왕함을 비롯한 한국 함정에 초저공 위협 비행을 했다. 당시 일본 측이 한국 군함에 위협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이 초계기 전력 측면에서 한국을 압도해왔기 때문이었다. 이같은 격차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P-3C 100여대 보유했던 일본…국산 기종 개발
1950년대 해상자위대 창설 이후 일본은 수십년 동안 해상초계기 전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왔다.
북부 홋카이도에서부터 남동부 오키나와에 이르는 광대한 해역에 군함을 모두 배치하는 것은 예산 등의 문제로 불가능했다.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넓은 면적을 정찰하고, 유사시 적 군함과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초계기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록히드(현 록히드마틴)가 개발한 P-3C는 일본이 사용한 대표적인 초계기다. P-3C는 잠수함·수상함 탐지 및 공격, 미사일 운용, 통신 중계, 수평선 밖에서 표적을 조준하는 능력 등을 고루 갖춘 우수한 초계기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국가에서 널리 쓰이는 베스트셀러 기종이다. 일본은 P-3C 100여 대를 자체 생산해 일부 기체를 운용중이다. 일본 인근 지역 외에도 소말리아 아덴만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도 정보수집 활동을 펼쳤다.
2007년 첫 비행을 한 P-1 초계기는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이 만든 최신 기종이다. 기체, 터보팬 엔진, 항공전자, 비행제어 등을 독자적으로 개발했다.

터보팬 엔진 4개를 장착해 P-3C의 최고속도(시속 745㎞)보다 훨씬 빠른 속도(시속 996㎞)로 비행한다. 유사시 바다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단시간 내 P-3C보다 현장에 먼저 도착해 더 오랜 시간 동안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셈이다.
비행제어 체계를 자체 개발하면서 재래식 구리선을 광섬유로 대체했다. 이를 통해 배선 중량과 소비전력을 줄였다. 조종실은 최신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어 조종사의 편의를 높였다.
기체에 장착된 각종 장비가 탐지한 정보는 정보처리 장비가 분석, 승무원에게 제공한다. 데이터링크를 통해 외부에서 수신한 정보를 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정보 분석과 융합을 승무원이 하던 것보다 속도와 정확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평가다.
일본은 P-1을 60여대 생산해 일선에서 운용할 예정이다. P-1이 P-3C를 모두 대체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해상자위대 초계기 규모는 기존보다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P-3C보다 우수한 첨단 장비로 구성된 P-1의 실전배치로 일본 초계기 전력은 질적 측면에서 현재보다 더 높아질 전망이다.
P-1은 P-3C보다 넓은 영역을 정찰할 수 있다. 도시바에서 개발한 HSP-106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는 디젤잠수함이 디젤 엔진을 가동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려놓는 스노클(해상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배기가스를 밖으로 내보내는 장치)을 탐지할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넓은 구역을 비행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적 함정과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P-3C보다 적은 규모로도 해상작전 수행은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에 압도적 열세…장기적 관점서 대비해야
한국 해군은 초계기 분야에서 일본에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1970년대 미국산 S-2 해상초계기를 도입했던 한국은 1995년 P-3C 8대를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2010년에는 P-3C를 성능개량한 P-3CK 8대를 추가 도입했다.
P-3C가 넓은 바다에 있는 표적만 탐지할 수 있었다면, P-3CK는 다목적 레이더를 통해 항구에 정박한 함정과 움직이는 지상 표적까지 식별한다.
P-3C보다 5배 이상 향상된 고배율 적외선 및 광학카메라, 디지털 음향수집 및 분석 장비, 낮은 수심에서 은밀하게 항해하는 디젤잠수함을 탐지할 자기탐지장비(MAD)를 탑재하고 있다.
해군은 미 보잉사로부터 P-8A 제트 초계기 6대를 추가 도입, 해상작전능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P-8A가 실전배치된다 해도 초계기 전력 격차는 여전히 크다. P-8A와 동급인 P-1 30여대를 보유한 일본은 최종적으로 60여대까지 P-1 숫자를 늘릴 전망이다.
P-3C도 50여대를 운용중이다. P-8A 6대와 P-3C/CK 16대를 보유한 한국을 양적·질적으로 앞선다. 구축함, 잠수함 전력차는 줄였지만 초계기는 당분간 일본이 압도적으로 우세인 이유다.

초계기 전력 격차를 이용해 일본이 동해나 남해에서 한국 군함의 활동을 초계기로 견제한다면, 한국 해군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독도 인근 해상에서 양측이 갈등을 빚는 상황이 발생하면, 한국 해군 P-3C보다 일본 해상자위대 P-1이 먼저 도착해 더 오랜 시간 활동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P-8A를 도입할 해군은 장기적으로는 P-8A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차기 해상초계기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P-3C/CK 대체를 포함한 초계기 전력 증강 방안을 지금부터 서둘러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노후한 P-3C를 대체하고자 지난해 신형 제트 초계기 시 술탄(Sea Sultan)을 도입했다.
시 술탄은 브라질 엠브라에르 리니지1000E 비즈니스 제트기에 이탈리아 레오나르도가 제작한 센서와 무장을 탑재한다.
수면 위를 탐색할 수 있는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전자전 관련 장비와 광학·열영상 장비, 어뢰와 소노부이, 위성통신장비 등을 장착해 해상작전을 펼친다.

최대 8500㎞를 비행할 수 있는 리니지1000E 제트기의 특성상 P-3C보다 훨씬 더 빠르게 먼 거리를 비행할 능력을 갖췄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일본이 터보프롭기인 P-3C를 제트기인 P-8A로 대체하고, 파키스탄도 제트 초계기로 전환하는 상황을 감안, 일각에선 P-1와 P-8A의 특성을 융합해 빠른 속도로 넓은 해역을 정찰하면서 크기는 작지만, 성능은 우수한 다목적 탑재 장비를 장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저공비행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비행할 수 있는 튼튼한 기체 구조, 우수한 연비를 갖춘 제트엔진, 인공지능(AI) 전투체계와 정보수집장비 등을 탑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KF-21 전투기 등에 적용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해 해상초계작전에 투입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은 1980년대부터 해군 전력 증강에 상당한 투자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세계 일부 국가만이 운용중인 이지스구축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잠수함 등 전략무기를 확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넓은 해역을 단시간에 감시할 수 있는 해상초계기 전력은 일본에 비해 격차가 매우 크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해상 안보가 흔들린다면 국가 전반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다. 초계기 전력 증강에 군과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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