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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쇼크에 경쟁적 화석연료 유턴… ‘탄소 불감증’ 되살아나나 [심층기획 - 우크라發 글로벌 탈탄소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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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16 06:00:00 수정 : 2022-06-16 08: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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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석유·가스 등 공급 차질
부족분 재생에너지로는 감당 안돼
각국 석유·석탄 등 연료 확보 몰두
생산 인프라 증설, 수출입 확대나서

이산화탄소 농도 400만년래 최고치
CAT “돌이킬수 없는 온난화에 빠져”
일각 “탈탄소 중요성 부각 계기될 것”
EU 신재생에너지 조기도입 전략 수립

에너지전문가 제언
“한국 탈탄소 속도 조절 필요성
에너지 안정성 먼저 확보해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에너지 수급 불안이 가중되면서 세계적인 탈(脫)탄소 흐름에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공급 부족을 재생에너지가 채울 수 없으니 결국 석유·석탄·가스와 같은 기존 화석연료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탈탄소는 세계적 화두다. 15일 정부와 에너지 업계, 국제기구 등에 따르면 2016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발효 후 121개 국가가 ‘2050 탄소중립목표 기후동맹’에 가입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고,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 유엔 제출 시한이 2020년 말로 정해지자 주요국의 탄소중립 선언이 가속화된 바 있다. 2019년 12월 유럽연합(EU)을 시작으로 중국(2020년 9월), 일본(2020년 10월), 한국(2020년 10월) 등의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다.

 

G20(주요 20개국) 정상은 지난해 영국에서 만나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하자고 파리협약의 목표치를 강화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에너지시스템은 물론 지구촌의 탄소중립 전략에도 큰 충격을 줬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세계 수출량의 25%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2020년 기준)이다. 동시에 세계 수출량의 11%를 차지한 세 번째 원유 수출국이기도 하다.

사진=AP연합뉴스

이런 나라의 석유와 가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 선물시장에서 거래된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8일 올 들어 두 번째 높은 122.11달러를 찍은 뒤 현재까지 120달러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이 지난 3월 모든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금지한 뒤 영국과 EU 등 서방이 동참하면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영국은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했고, EU도 러시아산 석유 90% 금수 조치에 착수했다. 8월에는 EU의 러시아산 석탄 금수 계획도 예정되어 있다.

러시아산 에너지를 끊는 각 나라들은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자국 화석연료 증산과 외국산 확보로 대응하고 있다.

 

기후변화 국제분석기관 기후행동트래커(CAT) 자료에 따르면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인프라 증설 계획을 마련했다. 미국과 호주, 영국, 노르웨이 등은 석유·가스 증산에 나선다. 캐나다는 수출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LNG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아프리카의 대표 산유국 나이지리아에서도 중단됐던 가스관 프로젝트가 부활했다.

러시아발(發) 에너지 위기에 직면한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의 주요국까지 ‘이때다’라는 식으로 화석연료 확보와 수출입을 늘리려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CAT는 ‘돌이킬 수 없는 온난화에 빠진 세계’라고 꼬집었다.

 

각국이 자국 이기주의에 화석연료 확보에 몰두하는 사이 지구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 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은 지난달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420.78ppm에 달했다고 3일 밝혔다. NOAA는 이런 수치가 최소 400만년 이래 최고치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수치는 인류가 본격적으로 석탄과 석유를 사용한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할 때 50%가량 높은 수준이다. 7일에는 지구온난화에 두 번째로 큰 악영향을 끼치는 온실가스인 메탄이 지난해 17ppb 늘어 측정이 시작된 1983년 이후 연간 가장 큰 증가율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번 에너지 위기가 장기적으로 글로벌 탄소중립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사태로 탄소중립 정책 실행이 지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탈탄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유럽의회 의원들이 지난 8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의사당에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중지하는 법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AP연합뉴스

EU는 최근 ‘신에너지 협약’ 등을 체결하고 보다 빠르게 신재생에너지를 도입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전쟁이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키운 것이다.

유럽의회는 역내에서 석유제품인 가솔린·디젤을 연료로 쓰는 차량 판매를 2035년 종료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단계적으로 줄이자는 일부 우파 의원의 타협안이 제시됐지만 의회는 예정대로 2035년까지 모든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하기로 했다.

 

이번 전쟁이나 에너지 위기와 직접 연관이 없는 분야에서는 차질 없는 탄소중립 이행이 준비되고 있다.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 세부안을 조만간 확정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8월 2050 탄소중립 목표인 ‘유럽그린딜’의 이행을 위한 법률안의 일부로 탄소국경조정제도 초안을 발표했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EU 역내 생산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모든 상장 기업에 적용될 구속력 있는 기후변화 정보공시 지침 초안을 3월 발표했다. 초안은 모든 상장 기업에 스코프(Scope·유효 범위)1·2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투자자들에게 중요하거나 기업이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한 경우에 한해 스코프3을 단계별로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세계자원기구(WRI)와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에 따르면 스코프1은 사업자가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는 배출원에서 발생하는 직접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의미한다. 스코프2는 사업자가 구입 및 사용한 전력·열의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이다. 스코프3은 사업장 밖의 가치 사슬에서 발생하는 스코프2 이외의 간접 배출이다.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시간 충분… 지금은 기술개발 매진할 때”

 

“단기적으로 에너지 안보와 위기 극복에 매진해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탄소중립을 확보해야 합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15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에도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의 탄소중립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2050년 탄소중립 달성 목표를 위한 시간은 충분하다”며 “성급하게 이루자는 것보다는 우리가 어떤 기술을 확보할 것이냐 하는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어 세계의 상황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안보와 생존이 필요하다”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동일한 목표지만 그 경로는 나라마다 달라 사정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직면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재생에너지 확보나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력 등이 선진국보다 상당히 뒤처져 있다”며 “지금이 한국적 탄소중립 포트폴리오 완성을 위해 놓치면 안 되는 때다. 글로벌 탄소중립 동향이 언제 또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 역할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전력거래소 이사장)는 “당분간 각국이 에너지 전환 속도를 조절하지 않겠느냐”면서도 “탄소제로를 향한 세계의 흐름을 역류할 정도는 아니고 탈탄소라는 국제사회의 과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현실성이 있는 탈탄소를 위해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며 “원전이나 석탄 같은 것을 포함해 에너지 안정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 전환을 하는 데 있어 한국에서 보틀넥(산업 발전의 장애물)이 되는 게 전기요금 통제”라면서 전력판매 독점과 정부의 가격개입을 탄소중립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했다. “소매요금이 통제되니까 계속 싼 원료만 찾고, 저·무탄소 기술 개발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력시장과 산업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탄소 저감이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처럼 가격 통제를 통한 사실상의 보조금 지급 효과를 누리거나 석유나 전기에 붙는 세금을 깎아주는 조치 등이 탈탄소·화석연료 저감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해외에서도 제기된다.

 

최근 캐나다 싱크탱크 지속가능발전연구소(IISD)는 올해 전 세계의 연료 보조금이 8300억달러(약 106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이런 행태가 전세계적인 탈탄소 움직임에 역행한다고 짚었다. 올해 보조금 추정치는 지난해 5000억달러(640조원)에서 66% 증가한 것이다. IISD는 보조금을 통해 화석연료를 계속 쓰게 하면 재생에너지 전환도, 독립도 늦어진다는 입장이다.

 

조 교수는 이와 관련해 “전기 원가를 정상화하는 방법이 탄소중립의 첫 단계”라며 “다양한 전기사업자가 경쟁하면서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기사업자 가격담합 등을 통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진 외국처럼 독립적인 전기가격 규제 기관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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