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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blackout)이란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의학적으론 밤새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 전날 밤 일이 기억나지 않는 현상을 뜻한다.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 이 증상은 뇌의 해마 작동이 중단됐을 때 나타난다. 술을 많이 마시면 신경세포 간 연결부위인 시냅스에서 신호 전달을 하는 글루타민산염의 방출이 억제된다. 사람의 의식이 끊기듯 특정 지역에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정전사태도 블랙아웃이라고 한다.

 

1997년 7월 13일 미국 뉴욕 인근의 한 변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일어난 대정전 사태는 뉴욕 시민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아 있다. 오후 9시가 다 돼서 발생한 정전으로 뉴욕이 무법천지로 변하면서 시민들은 약 25시간 동안 ‘공포의 밤’을 보냈다. 암흑을 틈타 대규모 약탈과 방화가 이어지면서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 1700개 상점이 폭도들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3000여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3억달러가 넘는 경제적 피해가 났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9월 15일 전국적인 블랙아웃이 벌어졌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뒤늦게 찾아온 무더위에 급증한 전력 사용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전력당국이 지역별로 돌아가며 전력 공급을 일시 중단하는 과정에서 초유의 정전 대란이 발생한 것이다. 신호등이 꺼져 도로가 마비되고, 공장이 멈춰 섰으며 병원에선 수술이 중단됐다. 수백만 가구가 피해를 봤다. 빗나간 수요 예측과 성급한 단전이 불러온 결과였다.

 

블랙아웃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력공급 예비력(공급능력 용량과 수요 차)이 최근 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력수급 비상경보 발령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폭염이 예상되면서 전력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지만 공급은 과거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탈원전 후폭풍까지 맞물리면서 올여름 최악의 전력난이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전력 공급을 단기간에 늘릴 뾰족한 방법은 없다. 10여년 만에 블랙아웃이란 끔찍한 재앙을 다시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가 일상에서 전기를 아껴 쓰는 수밖에.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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