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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최저주거기준’… 쪽방·반지하 재해 피해 반복

입력 : 2022-08-21 19:38:41 수정 : 2022-08-21 22: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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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채광 등 기준 충족 명시
구체적 측정 기준은 없어 문제
인권위서 3차례 조정 권고에도
2011년 개정 이후 변화는 없어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김모(77)씨의 쪽방에는 ‘배수로’가 있다. 몇년 전 폭우가 내리던 날, 천장에서 빗물이 새어들어와 방바닥과 옷가지가 흠뻑 젖었다. 집주인에게 천장 방수 공사를 부탁했더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결국 손수 방바닥을 깨서 물을 뺄 길을 만들어야 했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8일, 김씨는 방 안에 배수로를 하나 더 만들어야 했다. 기존에 물이 새던 곳이 아닌, 다른 쪽 천장에서 물이 샜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평, 두평짜리 쪽방에 살면서 여름이면 더위에 시달리고 비 오면 물까지 새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고 토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간밤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 현장을 찾아 상황 설명을 듣고 있다. 서울시 제공

폭우로 반지하에 있던 일가족 3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하자 서울시는 반지하를 없애고 반지하 거주민을 공공임대주택이나 지상층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돕는 반지하 대책을 발표했다. 불과 한달 전엔 폭염에 취약한 쪽방이 대표적인 주거 문제로 떠올랐다. 앞서 4월에는 고시원의 화재 사망 사고가 잇따라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처럼 쪽방, 반지하, 고시원 등 빈곤층의 주거 문제가 반복되면서 최저주거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주거기본법상의 ‘최저주거기준’은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수준에 관한 지표로, 주거기본법 제17조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이 설정·공고한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에 우선적인 주택 공급 및 개량자금 지원을 할 수 있다.

 

국토부는 주거실태조사에서 2020년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를 전체의 4.6%로 발표했다. 조사를 시작한 2006년에는 16.6%였다. 숫자만 보면 주거권이 개선된 듯 보인다.

 

하지만 국회입법조사처는 그해 12월 ‘최저주거기준의 내용과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개선된 수치만큼 국민의 주거환경이 대폭 향상됐다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최저주거기준은 2011년 개정·공표된 이후로 현재까지 개정 없이 유지되고 있는데, 그 기준 자체가 열악하고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최저주거기준 제4조에 따르면 주택은 안전성·쾌적성 확보를 위해 ‘적절한’ 방음·채광·환기 등을 갖추는 등 구조·성능 및 환경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적절한’을 측정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은 없는 식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12년, 2016년, 2019년 3차례에 걸쳐 최저주거기준 조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이미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반지하가 폭우라는 재해에 취약한 건 맞지만, 쪽방이나 비닐하우스 또한 폭염이라는 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면서 “비적정주거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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