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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숨은 영웅'… 미군 女 간호장교 본햄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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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16 19:00:00 수정 : 2022-10-16 20: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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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틴 美 국방장관, 여성 영웅으로 '추앙'
추락 수송기에 있던 부상병 등 17명 구조
본인도 크게 다쳐 9개월 병원서 치료받아
훈장에 1계급 특진… 1952년 대위로 전역

미국 국방부 장관이 미군에 크게 공헌한 여성 영웅들을 기려며 6·25전쟁 참전용사를 언급해 눈길을 끈다. 정작 한국인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향후 우리 보훈당국이 주목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1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 여성군인기념관에서 열린 기념관 설립 25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스틴 장관은 미군 역사를 빛낸 여성 영웅을 소개하며 6·25전쟁 참전용사인 간호장교 조니타 본햄(1922∼1994)을 각별히 언급했다. 알링턴=AP연합뉴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州) 알링턴에 있는 ‘여성군인기념관’(Military Women’s Memorial)을 찾아 연설했다. 1997년 기념관이 알링턴 국립묘지 인근에 들어선 지 25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이 열린 데 따른 것이다. 그는 역사상 미군의 승리에 기여한 여성들 이름을 죽 언급하던 중 한국 이야기를 꺼냈다. 6·25전쟁에서 뛰어난 무공으로 훈장을 받은 간호장교 조니타 본햄(1922∼1994) 중위가 주인공이다. 오스틴 장관은 “오늘 우리는 한국에서 복무한 본햄 중위와 같은 여성들을 기린다(honor)”고 말했다.

 

여성군인기념관에 따르면 본햄은 오클라호마주(州) 베닝턴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육군항공단(현 공군)에 입대해 간호장교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했다. 미처 실전에 투입되기 전 전쟁이 끝나면서 본햄은 당시 미군이 주둔했던 필리핀, 그리고 미군이 점령한 패전국 일본 등지에서 일정 기간 복무했다. 이후 미국으로 귀국하며 현역을 떠나 예비역에 편입됐다.

 

1950년 6월25일 한반도에서 북한이 한국을 기습남침하며 전쟁이 발발하자 본햄은 현역 공군 중위로 복귀했다. 그리고 최일선에 투입돼 부상병의 응급치료 및 후송 임무를 수행했다. 소정의 비행훈련을 마친 본햄은 응급환자를 후송하는 군용 수송기에 탑승하는 일이 잦았다. 여성군인기념관은 “전쟁 기간 본햄의 비행시간은 245시간에 달했고 그가 구조한 부상병은 60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의 북진이 본격화한 1950년 9월26일 그날도 본햄은 C-54 스카이마스터 수송기로 부상병과 환자들을 후송하는 임무에 투입됐다. 해당 C-54 수송기는 내부가 병원 응급실처럼 개조됐으며 조종사 등을 제외하고 본햄을 비롯해 의료진 3명이 동승했다. 최전선에서 싸우다 다친 병사들을 싣고 서울 인근 김포 공군기지로 향하던 C-54 수송기에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그날 따라 강풍이 부는 등 기상 여건도 악천후였다. 조종사가 황급히 비상착륙을 시도했으나 그만 바닷가에서 800m쯤 떨어진 동해상으로 추락하며 기체가 세 동강이 나고 말았다.

1950년 10월 심한 골절상 등을 입고 병원에 입원 중이던 미 공군 간호장교 조니타 본햄(오른쪽) 중위가 장성급 지휘관의 위문과 격려를 받는 모습. 위의 작은 사진은 본햄의 현역 시절 모습. 미 공군 홈페이지

차가운 바다에 빠진 본햄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어쨌든 부상병과 환자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는 물속을 헤엄쳐 구명보트가 있는 쪽으로 접근했다. 구명보트에 달린 밧줄을 끌고 당기는 과정에서 뼈가 부러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부상병과 환자들을 구명보트 쪽으로 안내해 밧줄을 잡고 오르도록 했다. 오스틴 장관은 “그날 본햄 중위 본인도 크게 다쳤으나 가까스로 17명의 생존자를 구출할 수 있었다”고 칭송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본햄은 광대뼈, 어깨, 왼쪽 손목 등 곳곳에 골절상을 입은 만신창이 상태였다. 무려 9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에야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미군은 그에게 여성으로는 최초로 비행십자훈장(Distinguished Flying Cross)을 수여했다. 본햄은 공로를 인정받아 대위로 진급했으나 ‘더는 군복무를 하기 힘든 몸 상태’라는 판정에 따라 1952년 전역했다.

 

이날 오스틴 장관은 본햄이 남긴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했다. 이듬해인 1951년 9월 추락 사고 1주년을 맞아 누군가 그에게 “그날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았느냐”고 물었다. 본햄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죠. 그래서 죽지 않았어요.”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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