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조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 심의를 놓고 정치권의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어제부터 예산안조정소위를 가동해 예산안 세부 심의에 돌입했으나 여야 간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169석의 더불어민주당은 “혈세 낭비 예산 삭감”을 주장하고, 국민의힘은 “예산 칼질을 통한 대선 불복”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상임위 곳곳에서 충돌과 파행이 속출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이재명 민주당 대표 검찰 수사 등을 놓고 여야는 이미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 예산안이 법정시한(12월 2일) 내 처리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헌정 사상 최초로 준예산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민주당은 국토교통위에서 용산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문화체육관광위에서는 청와대 개방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등 대통령실 이전 예산을 줄줄이 들어내고 있다. 행정안전위에서 경찰국 관련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가 어제 다시 20% 삭감으로 조정했다. 민주당은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떠오른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예산도 모두 삭감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정부의 ‘탈원전 폐기’ 정책까지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은 증액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에서 빠진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원 예산 5000억원을 되살렸다. 중소기업·소상공인·취약자 지원 예산, 영구·국민 임대주택 공급 확대 예산 등도 증액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상임위별 예산 심사에서 민주당 주도 예산은 8조원가량이 증액됐고, 정부 제출 예산은 1조2000억원가량 삭감됐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부가 일을 못 하도록 아예 손발을 묶겠다는 거야의 횡포라고밖에 할 수 없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일단 일은 할 수 있도록 기본 여건은 마련해 줘야 한다.
민주당은 강대강 대치로 치달아 끝내 준예산 사태까지 갈 경우 다수당인 자신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예산안 증액은 헌법상 정부 동의 없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으로서도 어차피 여당과 협상을 벌여야 한다. 국민의힘도 “대선 불복” 운운하며 비난에만 힘을 쏟을 뿐 타협에 나서지 않아 국민이 답답해한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의 3고 파고로 국민 생활이 어느 때보다 힘들다. 여야는 국가 살림살이를 볼모로 벌이는 최악의 정쟁을 당장 멈추고 이제라도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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